시와 憧憬 988

박준의 시배달 - 이현호,「첫사랑에 대한 소고」

박준의 시배달 - 이현호,「첫사랑에 대한 소고」 이현호,「첫사랑에 대한 소고」를 배달하며 알 수 없는 일을 앞에 두고 사람은 곧잘 눈을 감습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내어다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차라리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어느 문화권이든 바닷가 마을에는 전해지는 미신이 많습니다. 두려움이 많다고 해도 될 테고 믿음이 많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 마음처럼 생각처럼 바다의 일이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인 듯 배를 띄워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바다와 사랑은 닮았습니다. 나를 띄워보내야 하는 숱한 처음들. 문학집배원 / 시인박준 2022.02.24(목) 작가 : 이현호 출전 :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문학동네, 2018)

시와 憧憬 2022.02.24

박준의 시 배달 / 김참, 「아득한 거리」

박준의 시 배달 / 김참, 「아득한 거리」 김참,「아득한 거리」를 배달하며 어느 강변입니다. 둔치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요. 시의 주인공은 쏟아지는 햇살을 피해 소나무 그늘로 갑니다. 그런데 이 소나무 아래 누가 풍금을 버리고 갔습니다. 누가 이 풍금을 버리고 갔을까 궁금해하면서 물끄러미 서 있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강의 건너편을 바라봅니다. 강 건너편에는 느티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그 나무 그늘 아래에는 어느 한 사람이 내가 있는 이 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건너편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 사람은 강 건너편의 나를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혹 저 사람은 왜 저기서 나를 바라보는가? 왜 풍금을 버리고 가는가? 하고 의아해하지는 않을까요. 새로운 한 해의 시작, 숱하게 열릴 우리의 사이가 오해보다는 이..

시와 憧憬 2022.02.10

박준의 시배달 - 이혜미,「빛멍」

박준의 시배달 - 이혜미,「빛멍」 이혜미,「빛멍」을 배달하며 빛에 멍이 든다는 것. “환한 것에도 상처”를 입는다는 것. 곰곰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오래 전 선물 받은 그림 한 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이 그림은 네모난 액자에 고이 들은 것은 아니었고 캔버스도 아니었습니다. 그해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있었지요. 유리창 너머에는 맑게 개인 하늘이 있었고 그 아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는 노트를 펴고 가방에서 펜을 꺼내 눈 앞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담은 환한 그림. 이내 그는 노트의 페이지를 주욱 찢어 제게 건냈습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그날의 날짜를 함께 적어주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제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벽면에 걸어두었습니다. 볼 때마다 정감이 가는 ..

시와 憧憬 2022.01.27

박준의 시배달 - 유혜빈 「미주의 노래」

박준의 시배달 - 유혜빈 「미주의 노래」 유혜빈 「미주의 노래」을 배달하며 마음의 소리는 어떤 것일까요. 말이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말 없는 순간에도 우리는 마음을 전하거나 읽을 수 있으니까요. 모국어로 삼아 구사할 수 있는 말이 서로 달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다 알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 아마 마음의 소리는 웃음이나 울음 혹은 노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일까요. 왜 마음먹기도 전에 들어차 있을까요. 이렇게나 가깝고도 먼 것일까요.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이길래 누구는 볼 수 있고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을까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변했다가 변한 마음에 겨우 적응할 때쯤..

시와 憧憬 2022.01.13

박준의 시배달 - 박철,「김포행 막차」

박준의 시배달 - 박철,「김포행 막차」 박철,「김포행 막차」을 배달하며 늦은 밤, 마지막 배차 순서의 버스가 달리는 풍경이 선연하게 그려집니다. 버스 안에 혼자 남아 있던 손님까지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이고요. 그 손님은 이내 골목 끝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손님이라는 존재를 시간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이 작품의 의미는 한결 넓어집니다. 그동안 기쁘지 않은 시간만큼 울었고요. 슬프지 않은 시간만큼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손님이 없지만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버스를 운전하는 한 사람이 핸들을 꼭 쥐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사랑도 많았던 지난 시간들을 다 흘려보내고 이제 나만의 호젓한 시간이 펼쳐진 것입니다. 어둠 속 벌판을 달리고..

시와 憧憬 2022.01.06

박준의 시배달 - 나희덕,「그 이불을 덮고」

박준의 시배달 - 나희덕,「그 이불을 덮고」 나희덕 ┃「그 이불을 덮고」을 배달하며 혹한의 날들을 앞두고 얼어붙지 않기 위해 나무는 스스로 말라갑니다. 뿌리로 수액을 내뿜기도 하고 넓은 잎을 땅에 떨구기도 하면서. 하지만 이러한 나무의 버림은 다른 존재에게 얻음와 생명이 되기도 합니다. 겨울 산중에 쌓인 낙엽을 들췄을 때 그 속에는 이르게 돋아난 어리고 연한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이니까요.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은 곧 내 곁의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깨닫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문학집배원 / 시인 박준 작가 : 나희덕 출전 :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04) [시/에세이] 그곳이 멀지 않다 : 나희덕 시집 ▲ 클릭 要 출처 / 문학광장 문장 – 생활 속 ..

시와 憧憬 2021.12.16

아닌 것 _ 애린 핸슨

아닌 것 _ 애린 핸슨 / 류시화 옮김 / 마음챙김의 시 마음챙김의 시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나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쳐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의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은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시와 憧憬 2021.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