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46·끝] 눈을 감고 보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경주 황룡사 정문의 이름은 우화문(雨花門)이었다. 불에 타 퇴락한 뒤에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공간이다. 최자(崔滋·1188~1260)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당시 우화문의 황량한 풍광이 지나던 이들을 모두 애상에 빠뜨렸다고 썼다. 학사 호종단(胡宗旦)이 이곳에 들렀다가 문기둥에 적힌 최홍빈(崔鴻賓)의 시를 보았다. “고목엔 삭풍이 울며 부는데, 잔물결에 석양빛 일렁이누나. 서성이며 예전 일 떠올리다가, 나도 몰래 눈물로 옷깃 적시네(古樹鳴朔吹, 微波漾殘暉. 徘徊想前事, 不覺淚霑衣).” 빈터엔 고목만 서 있고, 그 위로 황량한 삭풍이 울며 지난다. 연못 위를 비추던 석양빛이 잘게 흔들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