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珉 世說 645

[정민의 世說新語] [646·끝] 눈을 감고 보라

[정민의 世說新語] [646·끝] 눈을 감고 보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경주 황룡사 정문의 이름은 우화문(雨花門)이었다. 불에 타 퇴락한 뒤에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공간이다. 최자(崔滋·1188~1260)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당시 우화문의 황량한 풍광이 지나던 이들을 모두 애상에 빠뜨렸다고 썼다. 학사 호종단(胡宗旦)이 이곳에 들렀다가 문기둥에 적힌 최홍빈(崔鴻賓)의 시를 보았다. “고목엔 삭풍이 울며 부는데, 잔물결에 석양빛 일렁이누나. 서성이며 예전 일 떠올리다가, 나도 몰래 눈물로 옷깃 적시네(古樹鳴朔吹, 微波漾殘暉. 徘徊想前事, 不覺淚霑衣).” 빈터엔 고목만 서 있고, 그 위로 황량한 삭풍이 울며 지난다. 연못 위를 비추던 석양빛이 잘게 흔들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찬..

鄭珉 世說 2021.10.28

[정민의 世說新語] [645] 뒷간거리의 가무락조개

[정민의 世說新語] [645] 뒷간거리의 가무락조개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백석 시 ‘가무락조개’는 모시조개의 다른 이름이다. 시는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로 시작된다. 빚을 못 얻고 되돌아오는 길, 팔리지 않은 채 그대로 놓인 뒷골목 시장의 가무락조개를 보며 시인은 “가무래기도 나도 모두 춥다”고 했다. 그다음 구절이 이상하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여기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그’가 시의 바른 해독을 방해한다. 가무래기 이야기를 하다가 ‘그’를 말했으니, 주어가 그인지 내 마음인지 파악이 어렵다. 가무락조개가 어떻게 걸어가나? 그걸 보고 내가 우쭐댈 수 있나? 찾아보니 친구에게 돈을 못 빌리고, 가..

鄭珉 世說 2021.10.21

[정민의 世說新語] [643] 말 주머니...,

[정민의 世說新語] [643] 말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도 없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78세 나던 1664년에 주부 권념(權惗)이 편지를 보내 윤선도의 과격한 언행을 심하게 질책했다. 윤선도가 답장했다. “주신 글을 잘 보았소. 비록 일리는 있다 하나 어찌 매번 이처럼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시는가? ‘주역’에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이 없다(括囊無咎)’고 했고, 전(傳)에는 ‘행실은 바르게 하고 말은 겸손하게 한다(危行言遜)’고 했소. 자기에게 잘못이 없어야 남을 비난한다는 것이 지극한 가르침이긴 하오. 하지만 내가 이를 했던 것은 선왕의 남다른 예우를 추념하여 지금의 전하께 보답하고자 해서,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오. 모름지기 자세히 살..

鄭珉 世說 2021.10.07

[정민의 世說新語] [642] 무성요예(無聲要譽)

[정민의 世說新語] [642] 무성요예(無聲要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상황(李相璜·1763~1841)이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갔다. 어둑한 새벽 괴산군에 닿을 무렵, 웬 백성이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혀 꽂고 있었다. 수십 보를 더 걸어가 새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히더니 다시 이를 세웠다. 이렇게 다섯 개를 세웠다. 어사가 목비(木碑)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무언가?” “선정비(善政碑)올시다. 나그네는 저게 선정비인 줄도 모르신단 말씀이오?” “진흙칠은 어째서?” 그가 대답했다. “암행어사가 떴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방이 저를 불러 이 선정비 열 개를 주더니, 동쪽 길에 다섯 개, 서쪽 길에 다섯 개를 세우랍디다. 눈먼 어사가 이걸 진짜 선정비로 여길까봐 진흙을 묻혀 세우는 게지요.”..

鄭珉 世說 2021.09.30

[정민의 世說新語] [641] 만리비추 (萬里悲秋)

[정민의 世說新語] [641] 만리비추 (萬里悲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민둥산억새축제. 산의 이름처럼 정상에는 나무가 없고, 드넓은 주능선 일대는 참억새밭이다. “바람 급해 하늘 높고 잔나비 파람 슬픈데, 물가 맑아 모래 흰 곳 새들 날아 돌아오네. 가없이 지는 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다함 없는 장강은 넘실넘실 흘러온다. 만리에 가을 슬퍼 늘 나그네 되었으니, 백년 인생 병 많은데 홀로 대에 오르누나. 고생으로 터럭 셈을 괴롭게 한하노니, 쇠한 몸 탁주 술잔 새롭게 멈춘다네(風急天高猿嘯哀, 渚清沙白鳥飛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두보의 절창 ‘등고(登高)’ 전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바람이 빠르고 하늘이 높고 잔나비 파람..

鄭珉 世說 2021.09.23

[정민의 世說新語] [640] 우두마면 (牛頭馬面)

[정민의 世說新語] [640] 우두마면 (牛頭馬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능엄경(楞嚴經)’을 본떠 의림도인(義林道人)에게 불교의 폐해를 말한 글이 있다. ‘증의림도인효능엄경(贈義林道人效楞嚴經)’이 그것이다. 그중의 한 단락. “의림이여! 이제 세간을 살펴보면 선악에 대한 보답이 일정치가 않아 끝내 허망한 데로 돌아가고 말았다네. 부처가 열반에 든 뒤 오랜 세월이 쌓인지라 정신이 신령치 않아, 들어도 알지를 못하기 때문일세. 천당에 줄지어 선 염라의 여러 관원들은 사적인 청탁을 들어주며 몰래 뇌물을 받고, 소 대가리같이 생긴 나찰(羅刹)과 말의 낯짝을 한 나졸들은 조종하고 기만함이 오로지 뇌물의 많고 적음만을 따른다네. 저승의 법도가 드러나지 않음이 옛날과는 다르..

鄭珉 世說 2021.09.16

[정민의 世說新語] [639] 선모신파(鮮侔晨葩)

[정민의 世說新語] [639] 선모신파(鮮侔晨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추사 김정희의 현판 글씨 '선모신파(鮮侔晨葩)'. 20009년 당시 서울 관훈동 우림화랑이 근대 고서화 작품 140점(글씨 55점, 그림 75점)으로 '묵향천고(墨香千古)-신록의 향연' 전을 열 때 공개된 사진. /우림화랑 글씨도 글씨지만 적힌 내용에서 쓴 사람의 학문과 품격을 만날 때 더 반갑다. 어떤 작품은 필획에 앞서 글귀로 먼저 진안(眞贋)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추사의 ‘선모신파(鮮侔晨葩)’ 현판을 보았을 때 그랬다. 찾아보니 이 구절은 진(晉)나라 속석(束皙)의 ‘보망시(補亡詩)’ 연작 중 ‘백화(白華)’ 시의 제3연에 들어있다. “백화의 검은 뿌리, 언덕 굽이 곁에 있네. 당당한 아가씨는 꾀함 없고 욕심 없어. 새벽..

鄭珉 世說 2021.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