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988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조해주,「가까운 거리」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조해주,「가까운 거리」 https://youtu.be/qhq1oKdy09M 조해주의 『가까운 거리』를 배달하며 거리라는 말은 흔히 두 가지로 쓰인다. 실제 공간에서의 거리, 그리고 심리적 거리다. 어느 경우든 가깝거나 멀다고 느끼는 감각이 사실이 아니거나 반대로 나타날 때가 있다. 특히 심리적으로는 매우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아닐 수 있다. 시에 나오는 택시 기사와 승객인 나,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렇다. 택시 기사는 자신이 “국문학을 전공했”고, “동기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한다.” 문학과의 거리가 가까움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승객인 내가 보기에 그것은 문학에의 심리적 애착일 뿐, 현실에서 택시는 노동의 현장에 다름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와 憧憬 2023.02.03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송승언,「학예사」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송승언,「학예사」 https://youtu.be/4fJSiwMNaVM 송승언의 『학예사』를 배달하며 우리가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물관에는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그릇이나 무기, 장신구 같은 물건들이 있다. 온전하게 모양을 갖춘 것도 있지만 부서진 작은 빗살무늬 하나만을 가까스로 지닌 토기 조각도 소중하게 보관된다. “어떤 것도 참고할 만했다, 파편 하나도 하찮은 게 없”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유골일 것이다. 두려움과 신비감으로 유골을 바라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삶이었을까, 어떤 영혼의 소유자였으며, 영겁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영혼은 어떻게 떠다니는가 등을 떠올린다. 비로소 우리는 피할 수 없이, 영혼..

시와 憧憬 2023.01.26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유희경,「톱과 귤」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유희경,「톱과 귤」 https://youtu.be/AsLpAhSOfKM 유희경의 『톱과 귤』을 배달하며 물건을 사는 일은 반복적이면서도 언제나 새롭다. 사려고 작정했던 것 말고 뭔가를 더 추가하는 것도 흥미롭다. 길가엔 언제나 물건들이 쌓여 있고, 그중 어느 것인가에 끌려 우리는 계획에 없던 것을 사게 된다. “오는 길에 사면 될 것을 서두르”는 이상한 순간적 심리가 작동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구매한 물건들의 거의 불가능한 조합이 이루어진다. 톱을 사러 갔다가 귤도 사게 되는 것이다. 톱과 귤의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만남은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파격적인가를 알려준다. 귤 봉지가 톱니에 걸려 찢어지고 귤이 쏟아지는 것도 이러한 파격의 연장이다. 그리하여 귤이 바닥을 굴러..

시와 憧憬 2023.01.10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문보영 『도로』에서

https://youtu.be/wsCMxxnFqc8 문보영, 『도로』에서 날마다 눈을 뜬다 착실하게 악몽을 꾸었다 빈 골목에 실편백나무 한 주를 꽂자 골목이 편협해 진다 내가 협소해 눈을 떠 본다 질주하고 싶어 등을 떼어 내기 위해 탁 트인 도로를 달리면 온 몸을 이실 직고하는 기분이 들 거야 나의 등이 마치 나의 이변인 것처럼 달랄수록 등은 강렬해지므로 눈을 질끈 뜬다 눈을 아주 크게 뜨면 무엇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빨라 달랄수록 나의 등이 나를 바싹 따라 잡고 멈추자 등이 먼저 주저앉고 나는 사라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운영하는 ‘문학광장’에서 제공합니다. [문학집배원] 문보영 「도로」을 배달하며 주변 어디서든지 달리는 사람을 많이 본다. 사람들은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달리는..

시와 憧憬 2022.12.23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김유림,「엘레네」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김유림,「엘레네」 https://youtu.be/3AX0d8LhFVo 김유림의「엘레네」를 배달하며 내 이름은 엘레네이다. 누군가 나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내 머리를, 또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이다. 그러나 왜인지 모르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내가 왜 “오래되어 닳은” 엘레네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고, 또 왜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일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어나지 않고 고개도 돌리지 않아 왔다”고 완강하게 말할 뿐이다. 개에게 끌려가는 남자나, 나무에 걸린 연도 이러한 무력한 이미지의 연장이다. 이 시는 결국 일어나라고 하는 누군가와 일어나지 못하는 존재의 선명한 대조로 되어 있다. 부르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명료하지 않다. 선지자의 목소리처럼..

시와 憧憬 2022.12.09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임솔아,「겟패킹」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임솔아,「겟패킹」 https://youtu.be/IzO1M52zdOo 임솔아,「겟패킹」을 배달하며 여행은 현실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떠날 이유를 백 개는 가지고 있고, 여행은 그 백 개의 이유 모두를 달랠 수 있다. 여행은 우리가 잠시나마 현실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고, 현실 밖으로 몸을 펴는 상상을 하게 한다. 가방을 싸는 순간, 우리는 이미 떠나는 자들이고 아무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방을 싸는 쾌감과 흥분이 여행의 에센스가 되기도 하다. 이 시에는 가방 싸는 일에 몰두하는 우리가 나온다. 친구들끼리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가방을 싸는 겟패킹이라는 게임을 한다. 실제 여행이 중요하겠지만, 게임만으로도 마음의 모든 거스러미를 ..

시와 憧憬 2022.11.25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송재학,「그림자」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 - 송재학,「그림자」 https://youtu.be/0LKQ9bN6SqE 내가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그림자는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육체를 숨길 수 없고 그것이 투명하지도 못하기에 그림자는 엄연한 현실이 된다. 이 그림자를 버릴 수도 치울 수도 없다. 날마다 마주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약간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림자는 나라는 존재와 행위를 빠짐없이 지상에 그려 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 속에서 취소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림자를 보며 날마다 깨닫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시에서는 그림자가 먼저 보이고 먼저 움직인다. 그림자가 마치 나보다 주도적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나타나지 않고 그림자만 계속 묘사되는 것이다. 그림자는 둘이 되기도..

시와 憧憬 2022.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