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문학집배원 이수명의 시배달-문보영 『도로』에서

cassia 2022. 12. 23. 10:15

https://youtu.be/wsCMxxnFqc8

 

문보영, 『도로』에서

날마다 눈을 뜬다 착실하게
악몽을 꾸었다

빈 골목에 실편백나무 한 주를 꽂자 
골목이 편협해 진다

내가 협소해 눈을 떠 본다

질주하고 싶어
등을 떼어 내기 위해

탁 트인 도로를 달리면
온 몸을 이실 직고하는 기분이 들 거야

나의 등이 마치 나의 이변인 것처럼

달랄수록 등은 강렬해지므로
눈을 질끈 뜬다

눈을 아주 크게 뜨면 무엇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빨라 달랄수록 나의 등이 나를 바싹 따라 잡고

멈추자
등이 먼저 주저앉고
나는 사라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운영하는 ‘문학광장’에서 제공합니다.

[문학집배원] 문보영 「도로」을 배달하며

주변 어디서든지 달리는 사람을 많이 본다. 사람들은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달리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이 시에도 달리는 사람이 나오는데, 달리는 이유는 뜻밖에도 등이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질주하고 싶어/등을 떼어 내기 위해”라고 말한다. 질주하는 이유가 등을 벗어 버리기 위한 것이라는 토로다. 등에 대한 이 집중은 특이하다. 시인은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착실히 붙어있는 등을 우리를 구속하는 존재로 여긴다. 특히 달리면서 “눈을 아주 크게 뜨면 정면 대신 내 등이 보일 거야//나의 등이 마치 나의 이변인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우리가 전속력으로 달릴 때 정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억압을 보게 된다는 것인데, 이변이라는 것은 감추어진 모습(裏邊)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異變)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화자의 바람처럼 달리면 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달리는 자는 해방될 수 있는가. 어느 사진에선가, 달리는 사람들이 손을 허공으로 날리면서 해방의 포즈를 취하는 것을 본 것만 같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한번 우리가 놓친 것을 가리켜 보인다. 등을 떼어 내기 위해 아무리 달려도 “달릴수록 등은 강렬해지는”, “달릴수록 나의 등이 나를 바싹 따라잡는” 역설이 그것이다.

문학집배원 : 이수명 2022.12.22.(Thu)

출전 : 책기둥(민음사 2017년) 작가 : 문보영

 

2022 이수명 – 문학광장 문장 (munjang.or.kr)

 

문보영, 「도로」 – 문학광장 문장

문보영 ┃「도로」를 배달하며 주변 어디서든지 달리는 사람을 많이 본다. 사람들은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달리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이 시에도 달리는 사람이 나오는데, 달리는 이유는 뜻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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