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珉 世說 645

[정민의 世說新語] [624] 빈환주인 (頻喚主人)

[정민의 世說新語] [624] 빈환주인 (頻喚主人)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종수 교수가 번역해 출간한 월봉(月峯) 책헌(策憲·1623~?) 스님의 ‘월봉집(月峯集)’을 읽는데, 주인공(主人公)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주인공은 원래 불가에서 자신의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내 몸의 주인공이 못 되면, 육체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허깨비 인생이 되고 만다. 사람은 마음 간수를 잘해야 한다. ‘응 판사에게 보임(示膺判事)’은 이렇다. “스님께서 불법에 투철하지 못하다면, 정좌하여 자주자주 주인공을 부르시오. 면목이 분명하여 해와 달과 같아져야, 육문(六門)이 늘 드러나 몸 떠나지 않으리니(尊師若未透玄津, 靜坐頻頻喚主人. 面目分明如日月, 六門常現不離身).” 시의 뜻은 이렇다. “스님! 깨달음의 한 소식을 ..

鄭珉 世說 2021.05.27

[정민의 世說新語] [623] 녹동백이 (綠瞳白耳)

[정민의 世說新語] [623] 녹동백이 (綠瞳白耳)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눈동자는 초록빛을 띠었던 모양이다. ‘소전(小傳)’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사람됨은 물소 이마에 칼 눈썹, 초록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한 사람만 가려서 더욱 친하였고, 부귀한 자를 보면 더욱 멀리하였다. 그래서 세상과 합치됨이 적었고 늘 가난하였다.(其爲人也, 犀額刀眉, 綠瞳而白耳. 擇孤高而愈親, 望繁華而愈疎. 故寡合而常貧.)” 넓은 이마에 날카로운 눈썹은 시원스럽되 타협하지 않는 불같은 성정을 보여준다. 초록 기운을 띤 눈동자에 유난히 흰 귀가 백대 이전의 사람과 흉금을 트고, 만리를 넘놀던 높은 뜻과 닮았다. 그 눈으로 구름과 안개의 기이한 자태를 관찰했고, 그 ..

鄭珉 世說 2021.05.20

[정민의 世說新語] [622] 다창파수 (茶槍破愁)

[정민의 世說新語] [622] 다창파수 (茶槍破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지난 주말 ‘한국의 다서’ 작업을 나와 함께 한 유동훈 선생이 연구실에 와서, 갓 나온 하동 첫 우전차(雨前茶)를 우려내 준다. 해차 향에 입안이 온통 환하다. 이 맛은 표현이 참 어렵다. 비릿한 듯 상큼한 생기가 식도를 따라 도미노 넘어가듯 퍼진다. 돌돌 말린 첫 잎은 생김새가 뾰족한 창과 같다 해서 다창(茶槍)이다. 여기에 두 번째 잎이 사르르 풀려 깃발처럼 내걸리면 그것이 일창일기(一槍一旗)다. 그 잎을 채취해 우전차를 만든다. 우전은 이렇게 창 끝에 깃발 하나 또는 둘을 달고 달려온다. 찬 겨울의 눈보라를 견디고, 자옥한 새벽 안개에 잠겨 차곡차곡 한 켜 한 켜 농축한 천지의 화기(和氣)가 창 끝처럼 솟았다. 그 첫 잎..

鄭珉 世說 2021.05.13

[정민의 世說新語] [621] 마이동풍 (馬耳東風)

[정민의 世說新語] [621] 마이동풍 (馬耳東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 2021.05.06 마이동풍(馬耳東風)은 봄바람이 말의 귀를 스쳐도 반응이 없다는 뜻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하늘이 높아지면 말이 살찐다고 한 걸 보면, 말은 아무래도 봄보다는 가을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Oh!컷] 제주도 서귀포시 가시리 풍력발전소 인근에서 마스크를 쓰고 조랑말을 탄 사람들이 노란 유채꽃밭에서 봄을 만끽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이백(李白)은 ‘답왕십이(答王十二)’에서 “북창에서 시를 읊고 부(賦)를 지어도, 만 마디 말 물 한 잔의 값도 쳐 주질 않네. 세상 사람 이 말 듣곤 모두 고갤 저으리니, 봄바람이 말의 귀에 부는 것과 같구나(吟詩作賦北窗裏, 萬言不直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

鄭珉 世說 2021.05.06

[정민의 世說新語] [620] 미음완보 (微吟緩步)

[정민의 世說新語] [620] 미음완보 (微吟緩步)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김나영 시인의 새 시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를 읽다가 시 ‘로마로 가는 길'에 눈이 멎는다. “천천히 제발 좀 처언처어어니 가자고 이 청맹과니야. 너는 속도의 한 가지 사용법밖에는 배우질 못했구나. 여태 속도에 다쳐 봤으면서 속도에 미쳐 봤으면서, 일찍 도착하면 일찍 실망할 뿐….” 정미조씨의 신곡 ‘시시한 이야기'를 다시 포개 읽는다. “앞서 가는 사람들 여러분, 뒤에 오는 사람들 여러분. 어딜 그리 바삐들 가시나요. 이길 끝엔 아무것 없어요, 앞서 가도 별 볼 일 없어요, 뒤에 가도 아무 일 없는 걸요. (중략) 가다 보면 결국은 알게 되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마지막은 시시한 걸.” 시간은 물속에 고여 있는데, 마음..

鄭珉 世說 2021.04.29

[정민의 世說新語] [619] 순사고언 (詢事考言)

[정민의 世說新語] [619] 순사고언 (詢事考言)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 2021.04.22 1728년 12월 7일, 숭문당(崇文堂)에서 영의정 이광좌(李光佐) 등이 영조를 모시고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강(進講)했다. 이날의 주제는 ‘변인재(辨人才)’ 즉 ‘성현이 인재를 살피는 방법(聖賢觀人之法)’에 관한 내용이었다. 본문을 읽은 뒤 시독관(侍讀官) 김상성(金尙星)이 말했다. “요순 시절에는 네, 아니오의 사이에도 절로 옳고 그름의 뜻이 있었습니다. 아랫사람의 말이라도 옳으면 네라고 했고, 윗사람의 말이라도 그르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옳으면 네라 하고 그르면 아니라 하여, 아첨하여 빌붙어 따르는 뜻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임금이 유념하겠다고 대답했다. 김상성이 또 말했다. “치국의 도리는 ..

鄭珉 世說 2021.04.22

[정민의 世說新語] [618] 신진대사(新陳代謝)

[정민의 世說新語] [618] 신진대사(新陳代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4.15 신진대사(新陳代謝)의 ‘진(陳)’은 해묵어 진부(陳腐)하다는 뜻이다. 신(新)은 ‘renewal’로, 신진은 진부한 묵은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사(謝)는 ‘시들다’ ‘떨어진다’이고, 대(代)는 ‘replace’이니, 대사는 시든 것을 싱싱한 것과 대체한다는 뜻이다. 묵은 것을 새것과 교체하고, 시든 것을 신선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신진대사다. 신체는 신진대사가 원활해야 건강하고, 조직은 신진대사가 순조로워야 잘 돌아간다. 묵은 것이 굳어 피가 도는 길을 막으면 혈전이 된다. 막히다 어느 순간 터지면 큰일 난다. 낡은 사고로 자리만 차지해 호령하면, 그 조직은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자꾸 막..

鄭珉 世說 202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