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珉 世說 645

[정민의 世說新語] [610] 부유의상(蜉蝣衣裳)

[世說新語] [610] 부유의상(蜉蝣衣裳) ▲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차운(次韻)’ 4수 중 제3수다. “산에 기댄 낡은 집이 바로 나의 고향인데, 꽃나무로 이웃 삼은 침상이 편안하다. 곤경 처해 형통하니 길 얻었음 알겠고, 삶 기뻐함 미혹 아니니 어긋난 길 부끄럽네. 저물녘 노는 하루살이 의상이 화려하고, 맑은 날에 나는 황새 편 날개가 길구나. 작고 큰 것 살펴보매 성품 각기 정해지니, 몇 사람이나 휘파람 불며 높은 산에 있을는지. (依山廢宅卽吾鄕, 花木爲鄰穩著牀. 處困猶亨知得路, 悅生非惑恥乖方. 蜉蝣晩戲衣裳麗, 鸛鶴晴飛翅翮長. 細大看看各定性, 幾人孤嘯在崇岡.)”나이가 들어도 좀체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은 드는 법이 없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금세 의심이 나..

鄭珉 世說 2021.02.18

[정민의 世說新語] [609] 마이불린(磨而不磷)

[世說新語] [609] 마이불린(磨而不磷) ▲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오래된 벼루를 노래한 ‘고연가(古硯歌)’의 한 대목이다. “굳은 재질 천지의 빼어난 기운 다 뽑았고, 속은 비어 만물 변화 모두 받아들인다네. 온전한 덕은 갈고 물들임 시험해볼 수 있고, 고요한 그 모습은 구르고 옮김 아예 없다(剛材儘挺一元秀, 虛中欲涵萬物變. 德全自可試磨涅, 容靜未必從輾轉).” 단단한 벼루 돌에 천지의 빼어난 기운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 하지만 속이 텅 비었으므로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것이 온전한 덕의 모습이다. 연지(硯池)에 맑은 물을 붓고 먹을 갈면 어느새 진한 먹물로 변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면서도 벼루는 묵직하게 놓인 채 움직이지 않는다.그는 벼루를 보..

鄭珉 世說 2021.02.11

[정민의 世說新語] [608] 백년양조 (百年兩朝)

[世說新語] [608] 백년양조 (百年兩朝) ▲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어무적(魚無迹)이 「신력탄(新曆嘆)」에서 새해의 덕담을 적었다. “내 소원은 3만 하고 6천의 긴 날들이, 인간 세상 두 번의 아침저녁 되었으면. 봄꽃이 한번 피어 천년 동안 붉어 있고, 가을 달 한번 비춰 천년 내내 환했으면. 요순(堯舜)의 얼굴이 지금껏 아직 곱고, 주공(周公) 공자 머리카락 여태까지 검었으면. 아침엔 토계(土階) 위서 군신(君臣) 화합 소리 듣고, 저녁엔 행단(杏壇) 곁의 공부하는 모습 보리. 1년에 황하 물이 두 번쯤 맑아지고, 3년마다 반도(蟠桃) 열매 자주자주 익었으면. 태산을 안주 삼고 구리 기둥 젓가락 삼아, 푸른 바다 술통에다 북두칠성 국자일세. 애오라지 만백성과 함께 취해 잠자면서, 맑은 가락 강구곡(..

鄭珉 世說 2021.02.04

[정민의 世說新語] [607] 옥작불휘 (玉爵弗揮)

[世說新語] [607] 옥작불휘 (玉爵弗揮) ▲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낙양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옥 술잔을 꺼내 귀한 손님을 접대했다. 관기(官妓)가 실수로 하나를 깨뜨렸다. 문언박이 화가 나서 죄 주려 하자, 사마광(司馬光)이 붓을 청해 글로 썼다. “옥 술잔을 털지 않음은 옛 기록에서 전례(典禮)를 들었지만,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지니, 과실이 있더라도 이 사람은 용서해줄 만하다(玉爵弗揮, 典禮雖聞於往記. 彩雲易散, 過差可恕於斯人).” 문언박이 껄껄 웃고 풀어주었다.이 말은 ‘예기'의 ‘곡례(曲禮)’ 상(上)에 “옥 술잔으로 마시는 자는 털지 않는다(飮玉爵者弗揮)”고 한 데서 나왔다. 옥 술잔에 남은 술을 털려다가 자칫 깨뜨리기가 쉬우니 아예 털지 말라는 뜻이다. 옥 술잔을 ..

鄭珉 世說 2021.01.28

[정민의 世說新語] [606] 죽외일지 (竹外一枝)

[世說新語] [606] 죽외일지 (竹外一枝) ▲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2016년 5월 12일,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 선생의 외손녀 후미코(駒田文子) 여사가 선생의 친필 서명이 든 여러 저서와,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서간첩 복제본을 보내왔다. 2012년 내가 하버드 옌칭 연구소에 1년간 머물 때, 그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던 후지쓰카 소장 고서를 50종 넘게 찾아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을 쓴 인연을 기념해 보내준 선물이었다.중간에 후지쓰카 선생의 친필 한 점이 들어있었다. “대나무 밖 한 가지가 기울어 더욱 좋다(竹外一枝斜更好)”고 쓴 일곱 자다. 그 옆에 ‘소헌학인(素軒學人)’이란 호와 ‘망한려(望漢廬)’란 인장이 또렷했다.찾아보니, 소동파가 쓴 ‘진태허의 매..

鄭珉 世說 2021.01.21

[정민의 世說新語] [605] 탄조모상 (呑棗模象)

[世說新語] [605] 탄조모상 (呑棗模象) ▲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심문 기록인 ‘사학징의(邪學懲義)’ 중 권철신(權哲身)의 처남 남필용(南必容)의 공초(供招)는 이랬다. “제가 여러 해 동안 사학(邪學)을 독실히 믿은 마음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라에서 지극히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지라 감히 옛것을 고쳐 새로움을 도모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권철신은 제사를 갑작스레 폐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밥과 국만으로 대략 진설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 말에 따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폐하지는 않겠습니다.”국금(國禁)을 따르겠다면서도 신앙을 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제사를 드리기는 하겠는데 흉내만 내겠다는 얘기였다. 이 ..

鄭珉 世說 2021.01.14

[정민의 世說新語] [604] 기득환실 (旣得患失)

[世說新語] [604] 기득환실 (旣得患失) ▲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1658년, 72세의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효종에게 ‘국시소(國是疏)’를 올렸다. 글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전하께서 바른 정치를 구하심이 날로 간절한데도 여태 요령을 얻지 못하고, 예지(叡智)를 하늘에서 받으셨으나 강건함이 부족하여, 상벌이 위에서 나오지 않고, 정사와 권세가 모두 아래에 있습니다. 대개 완악하고 둔한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얻으려 안달하고 잃을까 근심하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비루한 자들이고, 겉으로는 온통 선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제 한 몸만 이롭게 하려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가짜요, 말만 번지르르한 자들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행세하는 자는 대부분 이 같은 부류입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 근심..

鄭珉 世說 2021.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