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珉 世說 645

[정민의 世說新語] [638] 이장선위 (易長先萎)

[정민의 世說新語] [638] 이장선위 (易長先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중 ‘춘명일사(春明逸史)’를 읽다가 ‘화훼물리(花卉物理)’란 글에서 마음이 환해졌다. 그 내용은 이렇다. “봄꽃은 꽃잎으로 지고, 가을꽃은 떨기로 진다. 꽃잎으로 지는 것은 열매가 달리고, 떨기로 지는 것은 열매가 없다. 열매가 있는 것은 씨로 싹이 트고, 열매가 없는 것은 뿌리에서 나온다. 잎이 두꺼운 것은 겨울에 푸르니 동백의 종류이고, 잎이 큰 것은 일찍 시드니 오동의 종류이다. 나무가 큰 것은 잎이 작으니 홰나무의 종류이고, 넝쿨로 나는 것은 열매가 크니 박과 외의 종류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열매가 없으니 모란의 종류이고, 꽃이 작은 것은 열매가 좋으니 대추..

鄭珉 世說 2021.09.02

[정민의 世說新語]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의 世說新語] [637] 해상조로(薤上朝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해로(薤露)’는 한위(漢魏) 시기의 만가(挽歌)다. 상여가 나갈 때 영구를 끌면서 사람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다. 초한(楚漢)의 쟁패 중에 제나라 대부 전횡(田橫)은 따르는 무리 5백인과 함께 바다 섬으로 들어갔다. 한고조 유방이 그를 부르자 어쩔 수 없이 낙양으로 나오다가 30리를 앞에 두고 굴욕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섬에서 그를 기다리던 무리 5백인이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모두 따라서 죽었다. 사람들이 이들의 넋을 달래려고 부른 노래가 바로 ‘해로’다. 해(薤)는 백합과의 다년생 초본인 염교를 말한다. 노래는 이렇다. “염교 잎 위 아침 이슬, 어이 쉬 마르는가? 이슬이야 마른대도 내일 아침 다시 지리. 사람 죽어 한번 ..

鄭珉 世說 2021.08.26

[정민의 世說新語] [636] 심상자분 (心上自分)

[정민의 世說新語] [636] 심상자분 (心上自分)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추사의 ‘정게증초의사'를 검여 유희강이 쓴 '완당정게(阮堂靜偈)', 1965년, 64×43㎝. /성균관대 박물관 몸은 일이 없는데 마음이 자꾸 분답하다. 작은 일에도 생각이 들끓어 쉬 가라앉지 않는다. 벽에 써붙여 둔 주자의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의 구절이 부끄럽다. 추사가 벗 초의 스님에게 써준 ‘정게(靜偈)’가 생각나 읽어본다. “네 마음 고요할 땐 저자라도 산과 같고, 네 마음 들렐 때는 산이어도 저자일세. 다만 마음 그 속에서, 저자와 산 나뉜다네. (중략) 너 말하길 성과 저자, 산속만은 못하다고. 산속에서 들렐 제면 또한 장차 어찌하나. 저자 안에 있더라도 산속이라 여기시게. 푸른 솔은 왼편 있..

鄭珉 世說 2021.08.19

[정민의 世說新語] [635] 유희임천 (惟喜任天)

[정민의 世說新語] [635] 유희임천 (惟喜任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새벽 산책 길에서 신석정 시인의 ‘대바람 소리’를 여러 날 외웠다.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屛風)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帝王)의 문(門)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종일 무료하게 서실을 서성이다, 앉아 책보다 지쳐 누웠다, 잠들다 깨어나도 바뀐 것 ..

鄭珉 世說 2021.08.12

[정민의 世說新語] [634] 당관삼사 (當官三事)

[정민의 世說新語] [634] 당관삼사 (當官三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한국고전번역원의 소식지 ‘고전사계’의 표지를 보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9대 성종 임금께서 부채에 쓴 어필(御筆)이 실려 있다. 7도막의 짤막한 경구를 써 놓았는데, 둘째 구절에 눈길이 갔다. 내용은 이렇다. “벼슬에 임하는 방법은 다만 세 가지 일이 있다. 청렴함과 삼감, 그리고 부지런함이다(當官之法, 唯有三事, 曰淸, 曰愼, 曰勤).” 관리가 지녀야 할 세 가지 가치로 먼저 청렴함을 꼽았다. 벼슬아치는 깨끗해야지 딴 꿍꿍이를 지니면 어긋난다. 그다음은 신중함이다, 할 말과 안 할 말을 잘 분간하고, 몸가짐이 묵직해야 한다. 셋째는 부지런함이다. 앞의 두 가지 없이 부지런하기만 하면 일을 벌여 놓고 수습이 안 되거나, 급..

鄭珉 世說 2021.08.05

[정민의 世說新語] [633] 수처작주 (隨處作主)

[정민의 世說新語] [633] 수처작주 (隨處作主)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열흘 전 폭염 속에 초의차(草衣茶)의 자취를 더듬어 남도 답사를 다녀왔다. 초의 스님이 머리를 깎은 나주 운흥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적 하나 없는 적막 속이었다. 다시 초의차의 전통으로 떡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은 불회사(佛會寺)로 갔다. 오랜만에 들른 불회사에서 정연(淨然) 큰스님의 소식을 물으니, 덕룡산 꼭대기 일봉암(日封菴)에서 혼자 지내신다는 말씀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 10년 만에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끓여주시는 불회사 떡차를 마셨다. 벽에 걸린 서옹(西翁) 스님의 글씨 때문에 어느덧 화제가 옮아가, 서옹 스님이 생전에 즐겨 쓰신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두고 한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대구가 되는 바깥 짝은 ‘입..

鄭珉 世說 2021.07.29

[정민의 世說新語] [632] 경경위사 (經經緯史)

[정민의 世說新語] [632] 경경위사 (經經緯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추사 김정희의 편액 글씨, 경경위사(經經緯史). 간송미술관 소장. 추사 김정희의 글씨 중에 ‘경경위사(經經緯史)’가 있다. 경(經)은 날줄, 위(緯)는 씨줄이니, 날줄을 세로로 걸고 씨줄이 가로로 오가며 한 필의 베를 짠다. 그러니까 경경위사란 말은 경경(經經), 즉 경전(經傳)을 날줄로 걸고, 위사(緯史) 곧 역사책을 씨줄로 매긴다는 뜻이다. 경도와 위도를 알아야 한 지점을 정확히 표시할 수가 있듯, 경전 공부로 중심축을 걸고 나서 여기에 역사 공부를 얹어야 바른 판단을 세워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이 말은 예전에 독서의 차례를 말할 때 늘 하던 말이다. 임헌회(任憲晦, 1811~1876)는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경전을 먼..

鄭珉 世說 2021.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