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珉 世說 645

[정민의 世說新語] [631] 망서지방 (忘暑之方)

[정민의 世說新語] [631] 망서지방 (忘暑之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올해는 장마와 폭염이 함께 올 모양이다. 코로나19까지 폭발적 증가세다. 그 와중에 무책임한 행동이 불쾌지수를 높인다. 다산은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20수 연작에서 인생사 답답하고 짜증 나는 장면을 한 방에 날려줄 통쾌한 광경을 나열했다. 그중 무더위에 관한 것만 두 편이다. “한 달 넘게 찌는 장마 퀴퀴한 내 쌓여 있고, 사지에 힘 쪽 빠져서 아침저녁 보낸다네. 새 가을 푸른 하늘 맑고도 드넓은데, 툭 트인 끝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구나.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跨月蒸淋積穢氛, 四肢無力度朝曛. 新秋碧落澄寥廓, 端軒都無一點雲. 不亦快哉).” 습기 먹은 벽지에 곰팡이가 올라오고, 온몸은 나른해서 꼼짝도 하기 싫다. 입추도..

鄭珉 世說 2021.07.15

[정민의 世說新語] [630] 일각장단 (一脚長短)

정민의 世說新語] [630] 일각장단 (一脚長短)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말에도 품격이 있다. 표현에 따라 같은 말도 달리 들린다. 한 젊은이가 어떤 사람이 다리 하나가 짧다고 말하자, 홍석주(洪奭周)가 나무랐다. “어째서 다리 하나가 더 길다고 말하지 않느냐? 길다고 말하면 짧은 것이 절로 드러나니 실은 같은 말이다. 말을 할 때 긴 것을 들고 짧은 것은 말하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입의 덕[口德]이다. 남을 살피거나 일을 논의할 때는 진실로 길고 짧음을 잘 구분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때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고 남의 단점을 드러낸다면 군자의 충후한 도리가 아니다.” ‘학강산필(鶴岡散筆)’에 나온다. 박지원이 ‘사소전(士小典)’에서 말했다. “귀가 먹어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귀머거리’라 ..

鄭珉 世說 2021.07.08

[정민의 世說新語] [629] 사유오장(仕有五瘴)

[정민의 世說新語] [629] 사유오장(仕有五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북송 때 매지(梅摯·994~1059)가 소주(韶州) 자사로 있으면서 ‘장설(瘴說)’을 지었다. ‘장(瘴)’은 남방의 풍토병을 일컫는 말이다. 글에서 그는 지방관의 다섯 가지 풍토병(仕有五瘴)에 대해 말했다. 첫째는 조부(租賦) 즉 세금 거두기의 병통이다. 다급하게 재촉하고 사납게 거둬들여, 아랫사람에게서 착취하여 윗사람에게 가져다 바친다(急催暴斂.剝下奉上). 윗사람은 밑에서 바치는 양의 많고 적음에 따라 능력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이 잠깐이다. 둘째는 형옥(刑獄)의 병통, 법 집행이 공정치 않아 생기는 문제다. 무슨 말인지 모를 법조문을 멋대로 들이대 선악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深文以逞, 良惡不白)..

鄭珉 世說 2021.07.01

[정민의 世說新語] [628] 사사무은 (事師無隱)

[정민의 世說新語] [628] 사사무은 (事師無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퇴계 이래 남인들의 공부법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열린 토론의 자세랄까? 권위를 존중하되 권위에 끌려다니지 않았다. 질문과 비판에 늘 열려 있었다. 성호 학파의 학통에도 이 토론의 정신은 모든 학문 활동의 근저에서 생생하게 작동했다. 남의 얘기를 듣고 풀이하는 데 멈추지 않고, 거기에 내 안목이 실려야 비로소 내 해석이 나온다. 그러자면 자득(自得)이 있어야 하고, 자득은 회의(懷疑)와 의심에서 비롯된다. 정말 그럴까? 이렇게 볼 수는 없나? 회의가 의문을 만들고, 의문이 질문으로 발전해 마침내 깨달음으로 점화되어야 한다. 기성의 권위를 그대로 따르면 내 뜻이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회의해서 덮어놓고 의심부터 하려 드는 것도 ..

鄭珉 世說 2021.06.24

[정민의 世說新語] [627] 사청사우 (乍晴乍雨)

[정민의 世說新語] [627] 사청사우 (乍晴乍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 초 문인,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초상. 수양대군의 단종 왕위 찬탈에 반발해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은둔하다 승려가 되었다. 보물 제1497호. /문화재청 세상일이 참 뜻 같지 않다. 그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는 피곤하고, 무심한 체 넘기자니 가슴에 남는 것이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잠깐 갰다 금세 비 오고(乍晴乍雨)’에서 노래한다. “잠깐 갰다 비가 오고 비 오다간 다시 개니, 하늘 도리 이러한데 세상의 인정이랴. 칭찬하다 어느새 도로 나를 비방하고, 이름을 피한다며 외려 명예 구한다네.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봄과 무슨 상관이며, 구름 가고 오는 것을 산은 아니 다툰다네. 세..

鄭珉 世說 2021.06.17

[정민의 世說新語] [626] 불삼숙상 (不三宿桑)

[정민의 世說新語] [626] 불삼숙상 (不三宿桑)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상호 시인의 새 시집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를 읽다가 ‘감나무의 물관을 자르시다’에서 마음이 멈췄다. “가을에 감을 따내신 우리 아버지 / 감나무에 더는 물이 오르지 않게/ 밑동에 뱅 둘러 물관을 자르셨다.// 더는 감나무에 오르지 못하겠다고/ 목줄을 끊기로 작정하셨던가 보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집을 지키던 감나무에 생긴/ 톱날 자국에 잘려 나는 아득해졌다.// 아들이 내려와 살지 않으리라 내다보신/ 아버지를 읽고 감나무처럼 숨이 턱 막혔다.” 90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감나무에 더는 오르지 못하겠다고 감나무 밑동에 돌려가며 톱질을 했다. 나무가 더 이상 땅에서 수분을 빨아들이지 못하..

鄭珉 世說 2021.06.10

[정민의 世說新語] [625] 행불리영 (行不履影)

[정민의 世說新語] [625] 행불리영 (行不履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대학 시절 한 동기생의 말투나 기억은 자꾸 희미해지는데, 그가 방정하게 큰절을 올리던 모습은 새록새록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절을 저렇게 반듯하게 잘할까? 고향이 대전인 그 친구의 절로 인해 대전 사람들은 예의가 반듯하다는 인상이 내게 심어졌을 정도다. 그 뒤 어디서건 큰절을 올릴 때마다 그가 절 올리던 모습을 의식했던 것 같다. 최원오 신부가 번역한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334~397)의 ‘성직자의 의무'를 읽다가 다음 대목에서 이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동작과 몸짓과 걸음걸이에서도 염치를 차려야 합니다. 정신 상태는 몸의 자세에서 식별됩니다. 몸동작은 영혼의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직무에 열성을 다..

鄭珉 世說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