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새해의 기도/ 이성선

cassia 2017. 1. 14. 03:12

 

 

새해의 기도

 

― 이성선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 이성선 시선집 이성선 시전집 (시와시학사, 2005)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흘러간다.’라고 하지만 정작 움직이고 변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지구 스스로 365번 자전하는 시간과 맞먹는 우주현상을 두고 우리는 '1년'이라고 한다. 새해를 맞이했다는 의미는 어느 한 기점에서 출발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공전을 위해 출발했다는 의미이다. 새해를 인식하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범우주적인 담대한 사유라 하겠다.

 

 이런 새해에 우리가 새로이 길을 가고, 새롭게 뜻을 세우고, 새로운 기대를 갖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자 축복이다. 새 눈으로 보면 낡은 것도 새 것이 되리라는 믿음 또한 엄청난 각성이고 발견이다. 새해엔 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성숙한 자아를 다짐하는 자체만으로 새 사람으로의 거듭남이 아니고 무엇이랴. 새해 첫날 아침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1년 내도록 이성의 햇살을 받은 정신은 깨어있으리라.

 

 새해엔 누구나 각오를 새롭게 하고서 그 소망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이하기 힘들 것이다.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해 달라는 소망은 시인으로서 매우 합당한 기도이다. 그러자면 먼저 허둥대거나 서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맑은 눈동자'를 가져야 하며, 지금보다 더 '고독한 길을' 가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될 것이다.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은 반드시 시인이 아니라도 유효한 기도일 수 있다. 그 기도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책을 더 가까이 하는 한해로 삼는 것은 어떠한가. '돈은 신을 축복할 기회를 준다'며 탈무드에서도 은근히 탐욕을 꼬득이지만, 돈은 원한다고 손에 쥐어지는 게 아닐뿐더러 이제 돈이라면 신물이 올라올 때도 되지 않았는가.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도 독서는 나쁘지 않다. 어떤 이의 독서 명언에 '때때로 독서는 생각하지 않기 위한 기발한 수단'이란 말도 있듯이 세상사에 찌든 마음과 번뇌를 벗고자 할 때도 독서에 빠져드는 것은 퍽 괜찮은 방법이다. 독서의 즐거움과 유익으로 날마다 새 소식을 듣는다면, 가장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꽃을 피울 수도 있지 않을까. / 권순진

 

출처 / hankooki.com[시로 여는 수요일] 새해의 기도 201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