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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世說新語] [635] 유희임천 (惟喜任天)

[정민의 世說新語] [635] 유희임천 (惟喜任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새벽 산책 길에서 신석정 시인의 ‘대바람 소리’를 여러 날 외웠다.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屛風)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帝王)의 문(門)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종일 무료하게 서실을 서성이다, 앉아 책보다 지쳐 누웠다, 잠들다 깨어나도 바뀐 것 ..

鄭珉 世說 2021.08.12

문장배달 /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

문장배달 /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 중에서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을 배달하며 다정하고 따뜻했던 마음은 언제 흐트러질까요. 어떤 관계든 몹시 허기지고 추운 날을 맞게 되기 마련입니다. 사이가 괜찮았을 때는 눈썰매를 타는 것처럼 붕 떠올랐던 마음이 어느 순간 아득하게 아래로 꺼져 버리죠. 그럴 때면 상대가 미워진 나머지 모든 걸 상대 탓으로 돌리고 싶어집니다. 마음이 식고 나서야,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관계가 나빠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줄 아느냐고 질문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인 줄 몰랐던 것처럼요. 마음이 두터울 때는 서로 다른 게 미덕이 되지만 마음이 희박해지면 어느 것도 참을 수 없어집니다. “우린 모두 자기만의 개를 가지게 될 거야.” 눈밭에 외친 이 소망처럼 우리..

책 한누리 2021.08.06

문장배달 / 이원석, 「까마귀 클럽」2021.07.08(thu)

문장배달 / 이원석, 「까마귀 클럽」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지금 이 사람들은 뭘 하는 걸까요. 느닷없이 파이팅을 외치더니 ‘프로틴’이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프로틴은 민이 어머니나 춘희 아버지, 원장님 같이 이 자리에는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한바탕 분노를 퍼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잠자코 듣고 나더니 프로틴이 화를 낸 방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합평을 해줍니다. ‘까마귀 클럽’은 ‘화를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들을 ‘노력형 분노자’로 만들어주는 모임입니다. 말하자면 화내는 연습을 하러 모인 사람들이에요. 굳이 연습해서 화를 내야 할 만큼 평소에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도대체 왜 화를 못 낼까요. 착하고 순하고..

책 한누리 2021.08.05

[정민의 世說新語] [634] 당관삼사 (當官三事)

[정민의 世說新語] [634] 당관삼사 (當官三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한국고전번역원의 소식지 ‘고전사계’의 표지를 보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9대 성종 임금께서 부채에 쓴 어필(御筆)이 실려 있다. 7도막의 짤막한 경구를 써 놓았는데, 둘째 구절에 눈길이 갔다. 내용은 이렇다. “벼슬에 임하는 방법은 다만 세 가지 일이 있다. 청렴함과 삼감, 그리고 부지런함이다(當官之法, 唯有三事, 曰淸, 曰愼, 曰勤).” 관리가 지녀야 할 세 가지 가치로 먼저 청렴함을 꼽았다. 벼슬아치는 깨끗해야지 딴 꿍꿍이를 지니면 어긋난다. 그다음은 신중함이다, 할 말과 안 할 말을 잘 분간하고, 몸가짐이 묵직해야 한다. 셋째는 부지런함이다. 앞의 두 가지 없이 부지런하기만 하면 일을 벌여 놓고 수습이 안 되거나, 급..

鄭珉 世說 2021.08.05

[정민의 世說新語] [633] 수처작주 (隨處作主)

[정민의 世說新語] [633] 수처작주 (隨處作主)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열흘 전 폭염 속에 초의차(草衣茶)의 자취를 더듬어 남도 답사를 다녀왔다. 초의 스님이 머리를 깎은 나주 운흥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적 하나 없는 적막 속이었다. 다시 초의차의 전통으로 떡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은 불회사(佛會寺)로 갔다. 오랜만에 들른 불회사에서 정연(淨然) 큰스님의 소식을 물으니, 덕룡산 꼭대기 일봉암(日封菴)에서 혼자 지내신다는 말씀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 10년 만에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끓여주시는 불회사 떡차를 마셨다. 벽에 걸린 서옹(西翁) 스님의 글씨 때문에 어느덧 화제가 옮아가, 서옹 스님이 생전에 즐겨 쓰신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두고 한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대구가 되는 바깥 짝은 ‘입..

鄭珉 世說 2021.07.29

시배달 / 김영승 「반성 673」

김영승 「반성 673」 김영승 「반성 673」을 배달하며 식구를 밖에서 만나는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이지만 만났을 때 공연히 서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 서럽다는 말에는 애틋하다 애처롭다 가엽다 미안하다라는 마음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아울러 반가우면서도 난처하며 동시에 근원을 알 수 없는 화도 조금은 섞여드는 것일 테고요. 그렇게나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었는데 왜 택시는 안 타고 버스를 타고 온 것인지, 번번이 밥때를 놓치고 다니는 것인지, 이제 그 옷은 그만 입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왜 아직도 그 외투를 입는 것인지. 이런 물음들도 치밀어오릅니다. 하지만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그냥 웃고 마는 것이 보통입니다. 내 앞에 선 그가 나를 보며 웃는 것처럼. 작가 : 김영승 출..

시와 憧憬 2021.07.29

문장배달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

문장배달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햇빛」을 배달하며 그럴 때 있지 않나요. 마음이 언짢고 잔뜩 꼬여서 세상이 볼품 없어 보일 때요. 신디는 병을 앓으면서 부쩍 그렇게 됐습니다. 이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러자니 외롭고, 남편이 구두쇠여서 자주 짜증이 나고, 친구들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리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그저 경황이 없을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간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에 취해 다른 사람의 사정을 미처 헤아리지 않았던 거죠. 무엇보다 올리브와 신디가 함께 바라본 2월의 햇빛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2월이 어중간한 날씨라고 쉽게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신디만..

책 한누리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