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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산새들과 친구되는 법’

cassia 2006. 1. 23. 04:56
겨울철 ‘산새들과 친구되는 법’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최병성 목사 

숲 속에 있는 저희 집엔 텔레비전이 없고 인터넷도 되지 않습니다.

때때로 방문하는 친구들이 이런 갑갑한 곳에서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재미? 시계까지 꽁꽁 얼어붙어 멈춰버릴 듯 요즘처럼 추운 겨울엔 숲 속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이 여름 숲이 주는 그것보다 줄어들긴 합니다.

하지만 제겐 추운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남모를 낙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 저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없다면 친구들의 지적대로 쓸쓸한 겨울 숲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와 신나는 게임보다 제게 더 큰 즐거움을 주는 친구들은,

어슴푸레 동이 트는 새벽이면 저희 집을 찾아와 쪼롱 쪼롱 쪼~로롱 맑고 청아한 노래로

제 단잠을 깨우는 산새들입니다. 아니 찾아온다는 표현보다는 저와 함께 산다는 것이

더 어울릴 만큼, 하루종일 저희 집 마당에서 복닥거리고 있는 친구들이지요.

들깨 든 작은 '혀'
"아 맛있다"는 듯이 작디 작은 혀에 들깨를 물고 있는 쇠박새의 모습.

까치밥? 직박구리밥!
유난히 과일을 좋아하는 직박구리가 마치 '까치밥'을 대신 먹고 있다.

황야의 결투
쇠박새와 박새가 먹이를 놓고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 채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냠냠' 해바라기씨
나무타기의 명수인 동고비가 해바라기씨를 물고 시식을 하고 있다.

어떤 자세로도..
섬섬 옥수로 바짝 마른 수수에 간신히 매달려 식사 중인 노랑턱멧새.

'어디있나~'
딱새가 후박나무 열매 위에 버티고 앉아 두리번 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다.

가장 용감한 새?
가장 용감한 새는 동고비일까...차려 놓은 만찬과 함께 친구가 되자는 부탁을 가장 먼저 들어준 새는 동고비였다.

몇 해 전부터 산새들이 먹이가 찾기 어려워지는 겨울이면 마당에 산새들을 위한 만찬을 차려놓았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 산새들도 각자 입맛이 다릅니다.

사과와 감 등 과일을 좋아하는 직박구리, 해바라기씨와 들깨를 맛있게 먹는 박새와 쇠박새,

식탁에는 올라오지 않고 늘 땅에 떨어진 들깨만을 고집하는 노랑턱멧새와 쑥새,

이따금 찾아와 나무 열매 몇 개 따 먹고 조용히 사라지는 딱새,

그리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동고비. 모두 저마다 개성 있는 입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차려준 먹이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때까치와 굴뚝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멧새, 꿩,

쇠딱따구리, 청딱따구리 등도 제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식성이 서로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가을부터 미리 그들의 만찬을 준비합니다.

산수유 열매, 후박나무 열매, 해바라기 씨, 들깨, 털지 않은 수수 열매, 노박덩굴 열매 등이지요.

다양한 산새들이 저희 집 마당에 찾아와 즐겁고 신나는 공연을 펼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갖춰져 있어야 한답니다.

산새들은 자신들을 위해 차려놓은 만찬을 공짜로 먹고 가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식사를 하다가도 가끔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형형색색의 목소리로

청아한 노래를 불러주곤 합니다. 숲에서 사는 새들이 들려주는 맑고 고운 노랫소리는

언제나 제 영혼에 즐거움과 힘이 됩니다. 산새들이 주는 멋진 즐거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서로 먼저 먹겠다고 밀고 밀치면서 펼쳐보이는 기가 막힌 공중 곡예입니다.

이젠 이 녀석들도 제가 익숙해졌는지 가까이 옆에 있어도 크게 경계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실험 삼아 식탁 한쪽에 조용히 앉아 저들이 가까이 다가오는지 기다려봤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바로 눈앞에 맛있는 먹이가 있는데 다가가기에는

겁이나 감히 식탁에 앉질 못했습니다. 쪼롱 쪼롱 짹짹거리며 제 머리 위를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기만 했습니다. 이때 제 귓전 가까이에서 팔랑거리는 산새들의 부드러운 날갯짓

소리는 제 가슴에 따스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저들도 경계심을 풀고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용감한 동고비가 다가왔고 꾀돌이 쇠박새도 곁에 다가와 먹이를 물고 갑니다.

인사동의 참새 아저씨처럼 아직 손바닥에 앉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제 손에 앉아

먹이를 쪼아 먹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도 품어봅니다.

한편으로는 먹는 것을 가지고 산새들을 유혹하는 것이 치사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들과 친해질 방법이 이 길밖에 없기에, 오늘도 찬바람 부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산새들의 재롱을 바라봅니다.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서강 지킴이' 최병성 목사는 강원도 영월군의 서강 가의 외딴집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영월 동강과 짝을 이룬 천혜의 비경인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하자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청소년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슬이야기'와‘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greenearth.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