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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부르는 '돌 그림'들

cassia 2006. 1. 29. 19:19

새해 복 부르는 '돌 그림'들

 


고암 정병례 전각전…가정의 화목과 복을 기원하는 길상 문양이나 글귀 새겨


미디어다음/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예부터 정월 초하루가 되면

가정의 화목과 복을 기원하는 길상 문양이나 글귀를 써넣은 종이를 집에 붙이던 풍습이 있었다.

2006년 병술년 새해를 맞아 이처럼 유례 깊은 길상 그림을 돌에 새겨 재해석한 전시가 열린다.

진선갤러리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고암 정병례 전각전을 찾아가 본다.

 

대길(大吉)
‘대길(大吉)’이라는 문자를 아래위로 배치해, 사람 얼굴처럼 익살스럽게 형상화한 길상 어문. 얕게 파낸 부분과 끌로 시원시원하게 툭툭 쳐낸 면의 대조가 도드라진다.

까치와 호랑이
새해를 맞이하여 기쁜 일만 오라는 뜻을 담은 민화 속 까치와 호랑이를 표현했다. 두 개의 길쭉한 돌을 이어 넓은 화면을 표현했다.

까치와 호랑이(찍힌 면)
앞의 전각을 종이에 찍은 모습. 그림이 도장처럼 거꾸로 찍히므로, 반대로 그림을 새겨 넣어야 원하던 모습을 얻을 수 있다.

천지인이 하나되는 조화로움
우주의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내는 요소, 즉 원방각(元方角)의 구성으로 천지의 모든 요소가 하나되는 조화로움이 곧 복을 불러오는 것임을 표현한 작품 ‘길상(吉祥)’.

천지인이 하나되는 조화로움(찍힌 면)
전각의 원본과 드러난 이미지가 좌우반전 됨으로써, 원본과는 또 다른 느낌이 된다.

삼족봉황(三族鳳凰)
상상 속의 상서로운 새 ‘봉황’을 삼족오와 같이 세 발 달린 모습으로 표현했다.

삼족봉황(찍힌 면)
찍힌 그림뿐 아니라, 작가의 서명, 낙관, 그리고 추가되는 글까지 조화를 이루어 원본과 또다른 전각예술의 멋이 새롭게 탄생한다.

십장생(十長生)
십장생 중 하나인 정다운 사슴 한 쌍과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요소, 강렬한 태양 문양을 새겨 장수와 번영의 기원을 담았다.

십장생(찍힌 면)
섬세한 칼맛이 고스란히 표현된 십장생 그림. 네 개의 돌을 이어 면적을 확장해 나갔다.

사방으로 번지는 길한 기운
길상 문양의 하나. 중심에 길을 뜻하는 상형문자를 두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길한 기운을 표현했다.

사방으로 번지는 길한 기운(찍힌 면)
원본은 돌 위에 잉크를 바른 것이라 색채가 무거우나, 찍힌 면은 보다 경쾌하고 가볍다.

세계 화합을 기원하며
전 세계가 평화를 외치지만 계층 간의 반목, 전쟁, 공포 등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화합을 기원하는 작품 ‘화(和)’. 전각의 옆면에는 ‘미국과 이락이 전쟁하고 있다. 제발’이란 글귀가, 윗면에는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락의 석유가 탐이 났나. 그것 때문에 서민과 어린이가 희생이 되다니!’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세계 화합을 기원하며(찍힌 면)
가운데의 붉은 색 상형문자는 화기애애함을 뜻하는 길상 문자이다. 붉은 색은 따뜻한 온기를 의미한다.

재앙 물리치는 개 짖는 소리
개 짖는 소리는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힘을 상징한 작품 ‘성(聲)’. 병술년 개띠 해와 잘 어울린다.

재앙 물리치는 개 짖는 소리(찍힌 면)
아래위로 여백을 주어 두루마리 족자처럼 시원한 맛을 줬다.

삼족오(三足烏)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는 태양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쌍어(雙魚)
한글의 ㄹ 자음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음과 양이 하나되면서 다시 환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오봉산일월도(五奉山日月圖)
해와 달은 영원함을, 오봉산의 가운데는 임금을 뜻하고 좌우는 정승을 나타낸다. 앞의 물은 백성을, 좌우측의 소나무는 항상 푸르고 번창함을 뜻한다.

초가삼간(草家三間)
길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모여있음을 표현한 길상집(吉祥集)을 뜻하는 갑골문자를 세 칸 집에 각색하여, 조그마한 초가삼간이지만 행복이 가득함을 표현했다.

득(得)
물질을 취함을 상징하는 문자 패(貝)를 새겨 보다 많은 생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글씨와 그림과 새김의 조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길상전’을 전각으로 새겨 표현했다. 희망을 상징하듯 힘차게 역동하는 문양을 배경으로, 마치 손으로 쓴 듯 독특한 필체의 글씨가 새겨졌다.

전시 전경
다양한 전각 원본이 선반에 나란히 전시되어 전각 애호가들의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는 크게 장수, 부귀, 화목 등을 기원하는 ‘길상 문양’을 담은 전각과,

길상의 뜻을 담은 한자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길상 어문’ 전각으로 나뉜다.

특히 그림을 찍어낸 전각 원본도 함께 전시해,

전각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전각은 글, 그림, 조각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종합예술이다.

대개 한 뼘도 되지 않는 돌 위에 형상을 칼로 새기고, 돌의 모서리를 조심조심 불규칙하게 쳐내어

마치 세월이 훑고 지나간 듯 파각(破却)한다. 그리고 이를 판화처럼 찍어내 감상한다.

 

전각의 전통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올라갈 만큼 오래되었으나

그 결과물은 동시대의 눈으로 보아도 고루함이 없다.

오히려 디자인을 하는 이들이 새겨 보아야 할 만큼 현대적인 감각의 조형미가 물씬 풍겨난다.

제한된 공간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해야 하는 만큼,

군더더기는 쳐내고 고갱이만 오롯이 남기는 절제의 예술이 바로 전각이기 때문이다.

고암 정병례는 글씨를 쓰는 법〔字法〕, 화면을 구성하고 그리는 법〔章法〕,

칼과 끌을 다루는 법〔刀法〕 어느 하나에도 치우침이 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해

국내 전각예술의 1인자로 손꼽히는 작가다. 그의 전각은 갤러리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대중을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감동적인 일화를 담은 ‘지하철 편지’나

‘풍경소리’ 글모음에 등장하는 ‘네모난 그림’들이 바로 정병례의 전각 그림들이다.

또한 ‘대망’과 ‘왕과 비’ 등 사극 드라마의 힘찬 타이틀에도 그의 전각이 사용된 바 있다.

 

 

김영동 / 아침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