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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린 겨울, 산새들의 안식처'

cassia 2005. 12. 28. 03:18
'눈내린 겨울, 산새들의 안식처'

기고 / 글, 사진 = 최병성 목사

찬바람 부는 해질 무렵, 창밖에 박새 한 마리가 앉아 졸고 있습니다. 따끈한 난롯가에 앉아 바깥 추위에도 졸고 있는 박새를 바라보노라니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마음 같아서는 따듯한 아랫목에 들어와 몸 좀 녹이라고 하고 싶지만, 저들이 제 마음을 알 턱이 없겠죠.

온 몸이 꽁꽁 얼어오는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요즘 같은 날씨엔 따듯한 온돌방이 없는 산새들은 이 추위를 어떻게 이겨 나갈지 마음이 아파오곤 합니다. 걱정해봐야 별 도움도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같은 숲에 살아가는 이웃사촌이기에 마음이 끌리곤 합니다.

그래도 산새들이 조금이나마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새집을 달아주는 것이지요. 숲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산새들에게 사람이 만들어준 새집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소용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집들이
마치 '놀러와'라고 말하는 듯, 집들이를 준비하려는 듯하는 박새의 모습이다.

'앗싸 내 집이다'
"야, 우리집이다! 친구들아 따듯한집 만들어줘 고마워."

안식처
바람도 차고 눈도 내린, 어찌 보면 작은 생명에게 삭막하게도 혹독한 겨울...인간의 작은 사랑과 관심으로 빚어진 공간에서 작은 생명이 따사한 햇살에 젖어 있다.

'자 이젠 외출을..'
자 이젠 슬슬 식사거리를 찾아나서 볼까나. 잠시 몸을 녹이고 숨을 고른 박새가 힘차게 외출을 나서고 있다.

함께 만드는 사랑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했던가...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손을 모으자 새들에게 꼭 필요한 집이 뚝딱뚝딱 만들어지고 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가 굳이 있다면 단지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자연의 일부 '인공 새집'
인공적이지만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돼버린 새집. 이처럼 숲속 군데군데 놓여진 인공 새집은 박새와 쇠박새 그리고 동고비와 곤줄박이 등 둥지를 엮을 줄 모르는 작은 생명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된다.

 

우리가 만들어 나무에 달아주는 새집은 봄과 겨울에 산새들이 애용하는 보금자리가 됩니다. 봄이면 알을 낳고 안전하게 새끼를 기르는 생명을 잉태하는 보금자리로, 추운 겨울이면 차가운 눈보라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안식처가 되어줍니다.

인위적인 새집을 모든 산새가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성이 강한 산새들이기에 둥지를 만드는 습성 역시 제각각입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방울새처럼 나뭇가지에 가느다란 풀로 작은 종기 모양의 둥지를 만드는 새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둥지를 풀잎으로 동그랗게 엮을 줄 아는 새들에겐 사람이 만들어 주는 새집은 쓸모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새가 둥지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박새와 쇠박새 그리고 동고비와 곤줄박이 등은 스스로 둥지를 엮어 내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위틈이나 나무 옹이 같은 작은 틈새를 좋아합니다. 안전하다 여겨지는 틈새에 이끼를 물어다 쌓고 알을 낳는 것이지요. 문제는 아쉽게도 이들이 둥지를 만들 만한 작은 틈이 숲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까닭에 인공 새집을 숲 속 여기저기에 달아주면 산새들이 즐겨 들어와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낳기도 하며, 그곳에서 꽁꽁 언 몸을 녹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박새와 쇠박새가 즐겨 들고나는 예쁜 새집들은, 지난여름 숲생태지도자협회와 교보생명이 함께 개최한 캠프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청소년과 비장애청소년들이 함께 만들어 숲에 달아 놓은 사랑의 새집입니다. 많은 분이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새집을 만들 수 있느냐 궁금해 하지만, 시각장애청소년과 비장애청소년이 함께 한 짝을 이뤄 서로 도와가며 못을 박고 칠을 하여 훌륭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 친구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숲에 달아 놓은 새집이 산새들에게 이 겨울 추위를 피하는 보금자리가 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오면, 알록달록한 예쁜 새집들은 귀여운 새끼들이 쫑알거리는 생명의 보금자리로 변신할 것입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매서운 추위가 빨리 찾아오고 눈도 많이 오고 있습니다. 특히 눈이 많이 오는 요즘 같은 추위에는 먹을 것을 찾지 못한 야생동물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들에게 따듯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건네줄 수 있다면 야생동물들이 이 추위를 이겨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 주말엔 스트레스도 풀 겸 한번 시간을 내 가까운 산에 오르면 어떨까요? 더불어 들깨, 옥수수, 콩, 해바라기 등의 산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산에 오르는 한쪽 길가에 뿌려준다면, 아마 산새들도 우리 사랑의 마음을 알고 맑고 청아한 노래로 화답해줄 것입니다. 비록 날씨는 춥지만 주위의 작은 생명을 돌아보는 따듯한 겨울이 되지 않을까요.

'서강 지킴이' 최병성 목사는 강원도 영월군의 서강 가의 외딴집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영월 동강과 짝을 이룬 천혜의 비경인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하자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청소년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그는 '이슬이야기'와‘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