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에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 |||||||||||||||||||||||||||||||||||||||||||||||||||||||||||
[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
“예, 어머니, 무등산에 다녀왔어요.” “뭐, 무등산, 아니 이렇게 험헌 날씨에 산에는 뭐할라고 간다냐. 응, 사람이 죽게 생겼는디, 저 봐라. 저그 텃밭에도 사람 절반이 빠진다. 사람 죽게 생겼어야. 잘못허다가는 죽는당께. 어멈한테 전화헝께 어디 나갔다고 그러더만, 간단 디가 무등산여. 암시랑토 않은 날도 힘든디, 조로케 눈이 많이 내린 날에 무슨 산이여. 지비서 자빠져 있제.” “아니, 이런 날씨에 등산을 해야 더 재밌어요. 어머니, 동지죽이나 한 그릇 주세요. 배고파 죽겠네.” “뭐여, 그 지랄헐지 아랐으면 죽 써 놓지 않을 것인디. 지놈 죽을라고 험헌 날씨에 산에 댕기고, 나는 새벽부터 동지죽 쑤느라고 애탄지고 모르고, 애고 썩을 놈.”
한데, 죄송스럽게 또 무등산에 올랐습니다. 오전 10시 30분에 무등산 증심사 주차장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요즈음은 번개산행이라고 문자를 보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는 산행입니다. 아침 날씨는 눈이 그쳐 맑은 하늘이 보였습니다.
무등산 증심사로 들어가는 도로에 심어진 가로수는 백합나무입니다. 높이는 보통 10~15m 정도의 큰 나무로 성장하는데, 5~6월에 녹색을 띤 노란색으로 가지 끝에 지름 약 6cm의 튤립 같은 꽃이 1개씩 핀다고 해서 튤립나무라고도 한답니다. 이 백합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입니다. 미국에서는 생장이 빨라 중요한 목재나무로 쓰이나 한국의 중부 이남에서는 관상용 또는 가로수로 심는답니다. 이 백합나무 열매는 폐과로서 10~11월에 익으며, 날개가 있고 종자가 1~2개씩 들어 있답니다. 그런데 그 날개가 겨울까지 붙어 있어서, 눈이 내리자 꼭 목련꽃 모양으로 변하였습니다. 도로는 이 목련꽃이 쭉 피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눈 덮인 무등산의 모습은 첫눈이 내렸던 지난 기사(12월 4일 '눈발이 되어 서석대까지 날아갔습니다')에서 표현한 것처럼 지금도 온통 하얀 눈세계였습니다. 그리고 무등산을 찾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습니다. 12:30, 무등산 중머리재에 있는 샘터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온통 눈세계라 앉을 자리도 없었습니다. 발로 눈을 다져서 터를 만들었습니다. 보온 도시락에 담은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잠깐 쉬는 틈에 등에서 흐르던 땀은 찬 기운으로 몸에 달라붙었습니다. 발끝은 차츰 시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1:20, 장불재를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오르는 길은 온통 눈꽃 터널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깊이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오르는 발길에 힘이 들었습니다. 오전까지 맑았던 또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발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2:20, 장불재에 도착했습니다. 무등산 장불재는 화순 만연산 쪽으로 가는 길, 군사도로를 타고 원효사 계곡인 산장 쪽으로 가는 길, 규봉암을 돌아 꼬막재로 가는 길, 중봉을 올라 동화사터로 내려가는 길, 중머리재로 가는 길, 등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누어지는 갈림길입니다. 장불재에 도착했을 때 눈보라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앞은 거의 500m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나 서석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장불재에서 가는 길들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서 거의 러셀을 하여 눈길을 헤쳐가야만 했습니다. 우리들은 산행 코스를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입석대 - 서석대에 오르지 않고, 중봉을 거쳐 다시 중머리재 - 증심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엔 계속하여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중머리재를 거처 봉황대, 당산나무로 길을 택했습니다. 무등산에 오르는 초입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수령 700년이 된 이 나무는 광주광역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나무 둘레는 4.8m이고, 높이는 28m나 되는 아주 큰 느티나무입니다.
당산나무에서 어깨에 내린 눈을 털어 냈습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세인봉 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달처럼 보였다가 다시 구름 속에 숨었습니다. 눈발은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발은 건너편 녹차밭에도 내리고 있었고, 계곡에 있는 증심사 위에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눈발이 산사를 고요 속에 멈추게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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