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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한 쌍이 그려낸 '사랑의 하트'

cassia 2005. 10. 29. 18:23
잠자리 한 쌍이 그려낸 '사랑의 하트'

미디어다음 / 글, 사진=최병성 목사 

사한 햇살이 좋아지는 늦가을입니다. 마당에 앉아있으니 잠자리 한 마리가 내 무릎에 앉아 함께 따스한 햇살을 즐기자고 합니다. 이 녀석을 바라보니 마음이 '짠~'해옵니다. 지난 여름 한철을 나서인지 곱던 날개 빛은 바래고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있습니다. 이제 곧 서리가 내리고 추워지면 그 생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잠자리는 기다란 네 개의 날개로 정지 비행과 고속 비행이 가능한 이 세상 최고의 비행사입니다. 부드러운 바람결 같은 잠자리의 평화로운 비행 모습은 하늘의 평화를 이 땅에 전해주는 평화의 사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사랑의 하트
암수 한 쌍의 잠자리가 사랑을 나누며 하트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빗자루' 타고 날아라...
나뭇가지를 앙잡고 선 잠자리의 모습이 마치 마법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모양새다.
원래 알 낳는 곳
잠자리는 한 쌍이 함께 물이 고인 웅덩이 등을 찾아 알을 낳는다. 잠자리가 반짝이는 자동차 위에 알을 낳는 것은 도시환경의 비애랄까...
닳아버린 날개
여름 한철을 지난 잠자리의 날개는 영광의 상처를 가득 품고 있었다.
변신 1 - 머리 나오고
'변태'의 신비랄까. 잠자리는 제 때를 스스로 알고 변신을 준비한다. 먼저 쪼개진 등에서 몸체와 머리를 꺼내고 있는 잠자리.
변신 2 - 꼬리를 빼내고
이어서 꼬리를 살짝 빼낸다.
변신 3 - 서서히 날개와 꼬리를 펼쳐
갓 알에서 깨어난 듯 잠자리는 서서히 날개와 꼬리를 펼치고...
변신 4 - 날기 위한 준비, 몸말리기
날기 위한 기지개를 펴는 듯 몸을 말리고 있는 잠자리.

 

러나 사실 잠자리의 비행을 평화롭다 생각하는 것은 바라보는 저의 주관적인 오해일 뿐이겠지요. 잠자리는 평화로움과 상관없이 날카로운 눈을 번뜩거리며 먹을 것을 찾아 날아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식성이 워낙 좋은 잠자리는 하루에 모기를 무려 300마리 정도까지 먹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잠자리가 많은 해에는 모기약이 덜 팔리기도 합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잠자리를 인공 사육해 모기를 퇴치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잠자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를 잡아주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합니다.

이런 잠자리가 얼마 전 서울에서 참으로 희귀한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짝짓기 중인 잠자리들이 주차장에 세워 놓은 자동차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알을 낳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잠자리는 원래 연못이나 강물 속에 알을 낳습니다. 그러나 삭막한 서울 하늘 아래서 알을 낳을 곳을 찾지 못한 잠자리들이 하늘과 구름이 비치는 자동차 지붕을 물로 착각하고 그곳에 알을 낳았던 것입니다. 바람을 타고 도시로 날아왔고, 짝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으나 그 어디에도 알을 낳을 곳을 찾지 못한 것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잠자리의 짝짓기는 마치 사랑의 하트 모양처럼 재미있는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수컷이 꼬리 끝으로 암컷의 목덜미를 꽉 잡고, 암컷은 긴 꼬리를 수컷의 배에 붙여 하트 모양을 연출합니다. 알을 낳을 때에도 두 마리가 함께 날아다니며 물 속에 알을 낳습니다.

잠자리 애벌레가 물 속의 생활을 끝내고 물가로 나와 껍질을 벗고 어른 잠자리가 되는 모습도 신비 그 자체입니다. 물속에서 모기 유충이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아가던 잠자리 애벌레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밖으로 나갈 때를 압니다. 때가 되면 이른 아침 잠자리 애벌레들이 물가로 나와 풀이나 바위 위로 올라가 몸을 말리기 시작합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30여분쯤 지나면 애벌레의 등이 터지기 시작하고 머리가 먼저 밖으로 나옵니다. 이어 상체와 앞다리가 나온 후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앞다리로 나뭇가지를 굳게 잡고 뒷다리와 꼬리를 '쭈~욱' 빼냅니다.

마침내 온 몸이 허물에서 다 빠져 나오면 날개와 꼬리가 요술처럼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차곡차곡 접었던 손수건을 펼치듯 사르르 펼쳐지는 날개와 마술방망이처럼 점점 길어지는 꼬리의 모습은 신비와 환상의 세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합니다.

날개와 꼬리가 다 펼쳐졌다고 금방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몸 안에 있는 수분을 오줌 누듯 꼬리 끝으로 방울방울 밖으로 떨궈냅니다. 어느 정도의 물이 나오는지 아세요? 잠자리 꼬리 밑에 컵을 받쳐놓았더니 그 작은 잠자리의 몸에서 자그마치 한 숟가락 정도의 물이 고였답니다.

물 속과 물 밖의 세상, 이 두 세상을 살아가는 잠자리를 바라보며 인간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 속에 살던 잠자리 애벌레가 때가 되면 물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자유롭게 창공을 날게 되듯, 우리도 어느 날 때가 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오늘도 평화로이 늦가을 하늘을 수놓는 잠자리들이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소망을 내 귀에 속삭이는 듯합니다.

'서강 지킴이' 최병성 목사는 강원도 영월군의 서강 가의 외딴집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영월 동강과 짝을 이룬 천혜의 비경인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하자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청소년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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