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실

“경(시간?)을 칠 녀석 같으니”

cassia 2005. 9. 25. 09:35

“경을 칠 녀석 같으니”


옛사람들은 버릇이 없거나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 이런 말을 하며 혼을 내려 했다. 왜 그랬을까.

조선시대 이경(二更․ 밤 10시 전후)이 되면 종루의 종을 28번 쳐 통행금지를 알리고 성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음날 오경(五更‧ 새벽 4시 전후)이 되면 종을 33번 쳐 도성 문을 열었다.

성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성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성문이 닫혀 통행금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가지 않고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성문지기에게 붙잡혔다.

이렇게 붙잡힌 사람들은 벌칙으로 종을 치게 했다. 무겁고 큰 종을 처음 쳐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무척 힘들어했을 것이다.

‘경을 친다‘ 는 말은 벌 받는 일이고 이래서 ‘경을 칠  녀석‘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 종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금 같은 시계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방법으로 종을 쳤다.
원시시대라면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쉬면되지만 사회의 틀이 잡히면서 사람들이 통일된 시간아래서 생활을 할 필요가 있게 됐다. 결국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생겨난 기기라고 볼 수 있다. 시계는 이처럼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 준 동시에 사람들의 통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또 농경사회에서는 언제 씨를 뿌리는지 등의 시간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정보였다. 이와 함께 궁궐 내 관료들의 소집, 국가행사 등에 시간을 정해놓을 필요가 생겼고 특히 전쟁을 할 때 여러 부대가 함께 기습공격을 해 이기려면 군대를 얼마만큼 제시간에 모으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필요성은 막대를 세워놓고 그림자를 이용한 해시계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해시계는 해가 지고나면 소용없었고 이래서 나온 것이 물시계다.
최초의 원시적인 물시계는 바닥에 작은 구멍을 뚫어 물통에 올려놓는 바가지였다. 물이 구멍 속으로 스며들어 바가지가 밑바닥에 닿으면 바가지를 비워내고 다시 물 위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바가지가 가라 않는데 걸리는 시간이 단위 시간이 되고 여러 개의 바가지가 가라앉는 시간을 계산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 단위가 흘렀는지를 알 수 있다.

보다 정확한 물시계는 이집트인들이 발명한 ‘클렙시드라’
클렙시드라는 작은 구멍이 난 양동이와 시간눈금을 그려 넣은 다른 양동이를 활용했다. 구멍이 뚫린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 위쪽에 올려놓아 빈 양동이에 일정하게 물이 떨어지도록 했다.
그리스 원로원에서는 의원들에게 가득 찬 물통을 나눠 주고 그 시간 안에 연설을 마치도록 했다고 한다. 그 물통에는 약 110리터의 물이 들어갔는데 양동이가 텅 비려면 지금 시간으로 20분쯤 걸렸다고 한다.

시간을 나타내는 방법이 점점 정확해 지면서 지금 우리가 즐겨 활용하는 알람시계도 등장하게 된다.
최초로 알람시계를 만든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을 아침에 깨우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플라톤은 철학을 가르치는 학원(아카데미)의 제자들을 아침에 깨우기 위해 알람시계를 만들었다. 커다란 물통에서부터 눈금 매겨진 물이 원통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그릇이 뒤집어 지면서 납공들이 구리 쟁반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학생들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쨍그랑, 쨍그랑’


7차교육과정 교과연관

6학년 물속에서의 무게와 압력

6학년 편리한 도구

9학년 일과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