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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윤리 척결하자’…마광수의 그림들

cassia 2005. 6. 10. 19:36

‘봉건윤리 척결하자’…마광수의 그림들

 

욕망·좌절·배신감 담긴, 탐미적 평화주의자 마광수의 ‘손톱’
미디어다음 /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1992년 외설 시비로 첨예한 논쟁을 빚었던 ‘즐거운 사라’의 마광수(54) 교수가 돌아왔다. 지난달에만 소설과 에세이집, 작가론 등 4권의 책을 펴냈고, 이달 초에는 서울신문 연재도 시작했다.

2003년 9월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복직한 뒤에도 한동안 칩거했던 모습을 볼 때 이처럼 활발한 활동은 이례적이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인사갤러리에서 열린 ‘이목일·마광수 2인전’에서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그림에 쏟아 부은 마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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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건윤리를 척결하자
하트 모양을 한 얼굴이 윤리학을 비난하는 모습에 ‘즐거운 사라’로 인해 수감되고 교수직도 해임되는 등 수난을 겪은 작가의 심정을 그대로 담았다.

봉건윤리를 척결하자
음탕음탕 섹시섹시
중의적인 키스
어둠 속의 키스
새처럼 날고 싶다

 

마 교수의 공식적인 화력은 1991년 화가 이목일과 이두식,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연 ‘4인의 에로틱 아트전’(서울 나무갤러리)에서 시작된다. 1994년에는 서울 다도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올해 1월에는 거제문화예술회관 초대로 ‘이목일·마광수 2인전’을 연 바 있다.

이런 내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 교수의 그림은 외도로 보일 법하다. 그러나 대광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교지의 표지화와 삽화를 도맡기도 했던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소설을 쓰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즐거운 사라’ 사건 이후 십여 년간 칩거생활을 하며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내적 치유를 경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마 교수의 그림을 보면 그가 느낀 욕망과 좌절, 배신감 등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을 향해 내뱉지 못했던 말들도, 그림을 통해서는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긴 손톱’에 대한 예찬을 비롯해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살고 싶은 마음, 현학적인 글쓰기와 봉건주의에 대한 비판 등이 가감 없이 실린 그의 그림은 ‘인간 마광수’의 꾸밈없고 소탈한 면모를 보여준다.

한동안 자기검열에 시달리며 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마 교수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간 억눌린 창작 욕구를 분출하듯 지난달에만 책 4권을 펴냈다.

직접 그린 삽화 40장을 실은 장편소설 ‘광마잡담’(해냄)과 철학 에세이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오늘의책)의 표지에서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해냄), 개정판 ‘윤동주 연구'(철학과현실사)를 펴냈지만 아직도 쌓아둔 미발표 글이 많아 올 한해 책 출간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했다.

아직은 독수리 타법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홈페이지도 직접 운영하며 세상과의 접속을 시도하는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즉흥적인 데포르마시옹(특정 부분을 강조·왜곡해 변형시키는 미술기법)이 가능한 그림을 그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마 교수의 그림은 다음 달 6일부터 11일까지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도 볼 수 있다. 같은 달 9일 오후 2시에는 대구 대백프라임홀에서 강연회도 열린다. 문의 053-420-8015.

 

 음탕음탕 섹시섹시
남녀의 교합을 자작시의 한 구절과 함께 익살스럽게 그려낸 ‘섹스’. 조금은 민망하면서도 해학적인 4·4조의 싯구가 흥겨움을 더한다.

 

 중의적인 키스
남녀의 옆얼굴로 보이는 그림 ‘키스’는 한자의 요철(凹凸), 음양을 상징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글의 ‘더’ 자가 되어 “더 키스를!” 이라는 숨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둠 속의 키스
다색판화 ‘KISS IN THE DARK’. 산적처럼 음흉한 인상의 남자가 살포시 눈을 감은 여자에게 키스하려는 모습을 과감한 구도로 그려냈다.

 

 새처럼 날고 싶다
‘새처럼 날고 싶다’에 등장하는 남자에게는 다리가 없다. 대신 하늘을 향해 희구하듯 두 팔을 한껏 뻗쳤다. 작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두 손은 날개다. 이 날개가 ‘자기검열’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여 있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다.

 

 뜬 인생은 꿈과 같아
인생의 덧없음을 읊은 그림 ‘뜬 인생은 꿈과 같아’. 회색으로 채색된 몸은 바윗덩어리처럼 가라앉아 있고, 찡그린 얼굴은 금세 울음을 터뜨릴 듯하다. ‘馬光洙 畵’ 대신 울 읍(泣)자를 써서 ‘馬光洙 泣’이라고 쓴 서명이 눈길을 끈다.

 

 목욕하는 소년
서툰 듯 고졸미가 넘치는 그림은 어린아이를 닮고 싶은 작가의 마음과 닿아있다. 마 교수는 “어린아이는 가장 순수하게 야해질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쉬운 글을 쓰자
마 교수는 엄숙주의를 넘어 쉬운 글을 쓰자고 주장한다. 무겁게 의식을 짓누르는 현학적 사고에 경도되지 말자는 것이다.

 

 업은 무서워
달마상처럼 눈을 부릅뜨고 부지불식간에 생을 덮치는 ‘업’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아주 미미한 존재가 된다.

 

 손톱 같은 단풍숲
다색판화 ‘손톱 같은 단풍숲’과 함께 한 마 교수. “손톱을 길게 길러 열 손가락마다 서로 다른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에게 가장 매력을 느낀다”는 그의 말은 사실 아래 인용한 아담의 말과 같은 상징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야한 사람’을 좋아하셔서 나 같은 남자한테도 여자처럼 치장할 권리를 주었죠. 그래서 나는 어느새 ‘탐미적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랍니다. 손톱이 짧으면 오히려 남을 할퀴게 되지요. 그렇지만 손톱이 길면 손톱이 부러지는 게 아까워서라도 남을 할퀴지 않게 되거든요.” (‘마광수의 섹스토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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