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31) 한 영국인의 조선탐사기록

cassia 2019. 4. 4. 12:57



(131) 한 영국인의 조선탐사기록

 

1816년 9월 1일. 아직은 여름 기운이 남아 있는 조선 서해안, 한 척의 영국 범선이 소형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다. 이 두 척의 배가 영국을 출발한 것이 2월 9일. 거의 7개월에 걸친 긴 항해였다. 통상을 위해 중국에 갔다가 귀국 길에 지도상에 위치한 미지의 땅 코리아(Corea)의 서해안을 방문한 것이었다. 당시는 대영제국의 새로운 세기라고 불리던 시대가 열리고 있던 때였다. 해양학자, 지질학자를 태운 영국군함이 전 세계 곳곳으로 항해해 가서 식민지 개척을 위한 탐사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조선 서해안 방문도 그 작업의 일환이었다.

소형군함 '라이어호'의 함장 바실 홀(Basil Hall)이 쓴 '조선 서해안과 류큐제도 발견 항해기'(1818)는 그 10일 간의 조선 탐사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바실 홀은 차분하고도 객관적 시선으로 미지의 땅 조선과 조선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육지에 내려서 머리를 풀어헤친 몇 몇 조선인의 모습을 접하고는 '원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을 가리켜 '야만적 이양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원시라는 용어 사용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조선이나 조선인을 대하는 그의 기본적 태도는 겸손하다. 자신들을 무조건 거부하는 조선인들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백발의 조선인 관리의 정신적 기품을 알아보고는 그에게 예의를 표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바실 홀의 조선 탐사기록을 읽고 있으면 서양인의 조선방문기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던 자기우월감과 동양인에 대한 멸시감이 그다지 느껴지지를 않는다. 이 영국인은 어떻게 해서 야만적인 동양 대(對) 문명화된 서양이라는 당시 서양인 일반의 선입견과 나름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것일까. 책 중간 중간에는 조선 서해안의 토질이라든가, 가옥구조 등을 세밀하게 조사한 기록이 첨가되어 있다. 이 기록은 지질학과 같은 근대 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바실 홀은 토질을 분석하고 땅을 측량하는 과학자의 냉철한 시선으로 미지의 땅 조선을 바라봤다. 모든 과학자가 그렇듯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감정적 판단은 철저하게 배제한 채, 눈앞에 보이는 사실에 기초하여 조선과 조선인을 기록하고 묘사해갔다. 덕분에 바실 홀의 조선 탐사기록을 읽고 있으면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조선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 조선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무지함으로 가득찬 야만국이 아니다. 오히려 그 조선은 서양인의 물량 공세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겸양의 도를 지킬 줄 아는 나라이다. 바실 홀이 조선을 특별히 좋아해서 그런 발견을 해낸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사물 사이에 쓸데없는 이데올로기의 막을 두지 않은 채, '사실'을 보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뿐이었다. 토질을 분석하는 지질학자처럼 객관적 시선으로 자기 앞에 놓인 대상을 보기 위해 노력했던 것뿐이었다. 때로는 이처럼 담백하고 단순하게 세상과 인간을 볼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가 난무하고 혼탁한 말이 난무할 때일수록 그런 시선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사진 : 조선수장과 그의 서기('조선 서해안과 류큐제도 발견 항해기'에 수록된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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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4,4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