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28) 이광수 '재생'과 삼일운동

cassia 2019. 2. 21. 09:41



(128) 이광수 '재생'과 삼일운동

 

1919년 3월 1일 조선의 수도 경성은 맑고 바람이 불었다. 이날 시작된 독립운동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여러 달 동안 지속되었다. 전 인구의 10프로에 달하는 2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그해 십이월까지 시위로 인해 80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일운동은 실패한 혁명이었을까. 이광수는 삼일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재생'(1924)에서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재생'의 신봉구는 삼일운동에 참여한 죄로 2년 6개월 형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막 출옥한 인물이다. 막상 출옥해서 나와 보니 세상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변해있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한 독립의 이상은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성 거리는 1919년의 일을 모두 잊은 듯 유쾌하고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불확실한 이상에 희망을 거는 대신 '돈'의 분명한 힘을 믿고, 돈을 향해 쫓아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년 6개월 수감 기간 동안 삶의 모든 희망이 되었던 아름다운 김순영은 이미 그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2년 6개월 동안 세상은 급변했지만 신봉구는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수감직전의 시간대에 기억이 정지된 채 2년 6개월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삼, 사일 정도 함께 검거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잠시 애틋한 눈길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인 김순영을 두고,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동키호테같은 환상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며 현실 감별력을 잃고 있기는 신봉구의 삼일운동 동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삼일 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주재소에 폭탄투척을 하지만 독립을 보기는커녕 허망하게 삶을 마감한다.

'재생'에서 삼일운동에 관여했던 인물들은 자살하거나, 살인누명을 쓰거나, 삶의 기반을 잃는 등 비극적 삶의 경로를 밟는다. 이들의 삶의 이력을 보고 있자면 삼일운동은 분명히 실패한 혁명이다. 적어도 이광수는 삼일운동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변혁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으니 그에게 남은 선택은 친일이외에는 없었다. 삼일운동에서 절망을 본 이광수와 달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제가 삼일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삼엄한 상황 속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광수가 삼일운동을 야만이라고 폄하하며 삼일운동에 참여했던 자신의 신념을 부인해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삼일운동의 경험에서 조선 독립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삼일운동을 경험하면서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순정한 인간 정신의 힘을 느꼈고, 그 힘에서 새로운 세상의 실현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순정한 인간 정신의 힘을 믿었던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역사는 그래도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진 : 이광수 재생 1회(동아일보, 192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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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 출처 : 매일신문 2019,02,21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