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29) 일본인이 쓴 명성황후 이야기

cassia 2019. 3. 9. 11:00



(129) 일본인이 쓴 명성황후 이야기

 

역사를 살펴보면 대중에게 통용되는 역사적 내용과 실제 '사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자면 명성황후와 관련한 역사적 내용이 그렇다. 2000년대 초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큰 호응을 얻은 적이 있다. 드라마 속,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의 칼이 자신을 향해 내리쳐지던 그 순간에도 서슬 퍼런 기운으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며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대략 이처럼 기억되고, 통용되어왔다.

그러나 구한말 지사 황현의 '매천야록'에 기록된 명성황후 민비는 드라마 속의 민비와는 상당히 다르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어지러운 구한말의 현실을 더욱 어지럽힌 인물로서 명성황후 민비를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명성황후는 놀이패를 불러 밤새워 유흥을 일삼는가 하면 미신을 신봉해서 수시로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명성황후의 모습은 교와라베(京童)라는 필명의 일본인이 재조(在朝)일본인 잡지 '조선공론'에 발표한 소설 '사자석상 괴담(石獅子の怪)'(1921)에서도 엿보이고 있다.

'사자석상 괴담'은 화자인 '나'가 조선총독부 청사 건축이 한참 진행되던 경복궁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는 몰락한 조선왕조의 유물이 굴러다니는 경복궁 정원에서 언젠가 들은 적 있는 민비 괴담을 떠올린다. 민비 괴담이란, 민비가 세력을 떨치고 있던 시절, 경복궁 정원의 돌로 만든 사자가 매일 밤 민비의 꿈자리를 어지럽히자, 마침내 민비가 북한산 산신에게 기도를 드려 악몽을 해결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민비가 죽은 지 30년이나 지난 후, 일본인이 조선의 황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을 발표하는데, 그 내용이 하필이면 괴담이라는 것. 참으로 불쾌하고 꺼림칙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소설 속 민비는 미신에 빠진 무지몽매한 인물로, 괴담의 주인공으로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국모다운 품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1920년대 초, 일제는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유포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여기에 미신에 빠져있던 조선황후만큼 좋은 선전거리가 또 있었을까.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악의적 평가가 사실이었다고 해도, 일제강점기 조선인들로서는 이 사실을 수용하기 어려웠음이 분명하다.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일제의 조선통치를 수용하고, 승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현실 상, 일본인들에게 시해된 명성황후를 조선의 국모로서 부각시키는 신화화 작업이 조선인 간에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대중들에게 통용되는 역사적 내용과 실제 사실 간의 거리는 이와 같은 시대적 딜레마로부터 발생될 때가 많았다. 최근 한 연구자가 "자기 미화로 치닫기 쉬운 나르시시즘과 허위의식의 유혹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역사를 직시할 것을 요청하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9년의 우리는 역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 것일까.

 

사진 :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발행된 일본어 잡지 '朝鮮公論' 창간호(1913년 4월호) 고려대학교 도서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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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3.7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