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30) 또 다른 '김내성'을 기다리며

cassia 2019. 3. 21. 04:57



(130) 또 다른 '김내성'을 기다리며

 

문학이란 묘한 것이어서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열정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소설가 김내성의 경우가 그랬다. 김내성은 명문 와세다 대학교에 유학하여 법을 전공하며 엘리트 관료로서의 안정적 미래를 착실하게 밟아가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소설가가 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우연히 읽은 몇 권의 추리소설, 즉 문학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범죄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법학과 추리소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취업의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1930년대 식민지 조선현실에서 소설가가 되겠다는 김내성의 선택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열정에 능력까지 더해진 덕분이었을까. 김내성은 일본의 추리소설전문잡지 문예현상모집에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당선되는 영광을 얻는다. 이로 인해 추리소설가를 향한 그의 열망은 '소명'에 가까울 정도 확고해지게 된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 추리소설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걸고 조선으로 귀국한다. 추리소설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던 조선에서 김내성은 최초의 추리소설전문작가로서 쉬지 않고 추리소설을 발표한다. 우리문학 최초의 장편추리소설인 '마인(魔人)'(1939)은 김내성의 낭만적 열정의 결과물이다.

소설은 세계적인 무용가인 공작부인 주은몽이 개최한 무도회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주은몽을 둘러싼 무시무시한 범죄가 발생하고 탐정 유불란이 그 범죄사건을 해결해간다. 당시 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팜므 파탈적 여주인공의 등장과 경성 시내를 휘젓는 자동차 추격 장면, 여기에 애절한 로맨스의 첨가. 이런 흥미로운 소재 덕분일까. '마인'은 추리소설이 여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던 조선에서 대중적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일본어로 발표한 처녀작과 비교할 때 연애담이 강조되고 추론의 과정은 약해지는 등, 추리소설로서는 퇴보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초등교육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서, 추리소설의 지적 추론과정을 즐길 수 있는 독자가 별로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유교이데올로기로 인해 문학은 교훈적이며,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 머리에 깊게 박혀있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모험 연애소설에 가까운 '마인'은 이러한 조선적 현실을 감안한 '조선식 맞춤형 추리소설'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김내성은 조선에 추리소설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마인'으로부터 팔십여 년이 지났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같은 일본추리소설가의 소설이 한국의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올린 지 이미 꽤 되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한국추리소설가의 소설은 순위에서는 물론 진열대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팔십여 년 전, 척박한 문화적 풍토 속에서 순문학중심주의에 저항하며 김내성이 이루어낸 노력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높은 교육열과 놀라운 과학 발전 덕분에 추리소설을 읽을 수 있는 대중들도 마련되어 있는 이 시대, 왜 더 많은 '김내성'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대중문학에 대한 한국사회와 문단의 인식이 팔십여 년 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나 않은 것인지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 : 김내성 _마인1회 _(_조선일보_, 1939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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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3,21(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