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22) 신여성을 싫어한 소설가 김동인

cassia 2018. 11. 29. 10:24



(122) 신여성을 싫어한 소설가 김동인

 

소설가 김동인의 대동강 사랑은 유명하다. 김동인이 사랑한 대동강은 지도상의 위치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대동강은 삼월 삼짇날부터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를 거쳐, 유월 유두에 이르는 시기, 기생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풍류 배들이 강을 메우며 축제가 열리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 대한 사랑이 너무 극진했던 탓일까.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여학생을 동경하던 때에도 김동인은 혼자서 기생 예찬론을 펼쳤다. 예찬론을 펼칠 뿐 아니라 몸소 기생들과 수개월에 걸친 동거생활까지 감행했다. 이 깊은 사랑의 후유증 때문인지 기생을 대체하여 시대의 새로운 히로인으로 등극하기 시작한 여학생, 즉 신여성에 대한 김동인의 증오는 이상할 정도로 깊었다. '김연실전'(1939)은 바로 그 증오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 소설이다.

'김연실전'의 김연실은 하급관리와 기생 사이에서 혼외자로 태어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동경유학을 떠난 인물이다. 소설 속 김연실은 말로는 자유연애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성적 방탕과 자율적 연애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며, 남녀평등을 주장하지만 극도로 남성종속적인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상대 남성과의 성적 관계를 장롱 속에 있던 '베개를 내리는 일'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김연실전'을 통해 모든 신여성을 매춘부로 묘사해내고 있었다. 신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김동인의 판단은 지나치게 악의적이었지만 일면 부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보수적 조선 사회에서 초기 신여성, 즉 여학생 중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으면서 행동 제약에서 자유로운 기생의 딸이나 첩의 딸이 많았다. 그리고 이들 신여성들은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와 갑작스럽게 만나버린 바람에 불륜, 방탕한 연애 등 행동과 의식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들 신여성들은 사회적 제약과 심리적 좌절감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삶을 향한 강렬한 열정과 집념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었다. 김동인은 그 점에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기생의 딸 김연실이 당시 사회를 향해 내질렀던 절망적 비명소리에 귀 기울일 생각도,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 그녀가 들인 처절한 노력을 돌아볼 생각도 없었다.

신여성을 향한 이와 같은 편견은 김동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지식인 남성 일반의 공통적 인식이었다. 김동인의 편견은 기생을 향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는 황당한 이유라도 내걸 수 있었지만 나머지 지식인 남성 일반의 편견은 그런 이유조차 없었다. 그들은 앞장서서 '평등'의 근대적 의식을 부르짖었지만 그 의식을 지식으로 받아들였을 뿐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 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미투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직 엘리트 여성 역시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 야만적 현실을 보고 있으면 백 여 년 전의 전근대적 조선에서 우리 사회가 과연 한 발짝이라도 진보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오른쪽사진 : 김연실전(문장, 193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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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 출처 : 매일신문 2018.11.29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