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20) 근대문학 연구자 김윤식 교수를 기억하며

cassia 2018. 11. 11. 15:28



(120) 근대문학 연구자 김윤식 교수를 기억하며

 

근대문학연구자 김윤식 교수가 지난 10월 25일 82세 나이로 타계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 중 한 사람이 96세였음을 감안한다면 연구자로서는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한 것이다. 김윤식 교수 강의를 처음 접한 것은 1988년 늦봄이었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에서 그의 초청 강연회가 개최되어 그 강연회를 들으러 간 것이었다. 그날 처음 본 김윤식 교수의 모습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접단(당시 표현 용어로 '가부라') 바지의 회색빛 양복, 앞가르마를 타서 자연스럽게 넘긴 머리카락, 다소 어눌한 느낌을 주는 경상도 억양의 느린 말투.

1988년 나는 이십대 중반으로 국문학과 석사과정 3학기 차였다. 한국 근대 소설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그와 관련한 전문 지식은 부끄러울 정도로 얕았다. 그 얕은 지식을 김윤식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메워가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선후배 역시 김윤식 교수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나 '한국근대문학사상'을 손에 들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문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있어서 김윤식 교수 연구서는 근대문학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통과의례 과정 중에서도 꼭 읽어야 할 책이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6)였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읽으면서 나는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책을 읽다가 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 자신이 가난한 식민지 청년 이광수가 되어서 근대적 풍물로 가득 찬 1910년대 일본도쿄 거리나 중국 상해의 조차지 혹은 1930년대 일제강점하의 조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소설 읽을 때에나 일어나는 감정이입작용을 나는 딱딱한 연구서를 읽으면서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상상력이 특별히 뛰어나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책 내용을 가득히 메운 세밀한 고증자료가 이광수 삶과 그의 시대를 내 눈 앞에 생생하게 재현시켜 준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이광수의 가혹한 운명에 가슴 저려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광수가 친일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조차도 분노와 비판보다는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이 앞섰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통해 나는 인간을 이해하고 시대를 읽는 법을 배워갔다. 그 이해는 내가 살지 않았던 먼 과거의 한 시기와 그 시기를 살았던 인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 역시 거기에 해당되었다.

자기치유의 힘, 어쩌면 이 것이 어줍지 않은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 십 년 이상 내가 문학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학연구의 이와 같은 힘을 김윤식 교수의 연구를 통해 배웠다. 말을 나눠 본 적도 없고, 제자가 되어서 지도를 받은 적도 없지만 내 연구는 언제나 그의 연구를 모범 삼아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김윤식 교수의 부재가 내게는 더욱더 강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근대문학연구에 손을 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을, 대부분 나와 같은 쓸쓸함을 느끼고 있으리라. ...오른쪽사진 : 김윤식 교수(1936-2018)
         

    

 

 

정혜영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 출처 : 매일신문 2018. 11. 1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