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35) 풍도바람꽃]

cassia 2017. 3. 31. 19:38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35) |풍도바람꽃] 살가운 바람 불면 찾아오는 ‘봄의 전령’


글·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사진·문순화 작가

2017.03.31 10:53 [569호] 2017.03


‘야생화 천국’ 풍도에서만 서식… 바람꽃은 ‘바람의 딸’ 아네모네속
 

풍도바람꽃, 이름만 들어도 정겹다. 이름 그대로 풍도에서만 서식하는 우리 고유의 야생화다. 풍도는 야생화 천국이다. 복수초, 노루귀, 꿩의바람꽃, 풍도대극, 초롱꽃 등 봄의 전령사들이 3월만 되면 앞다퉈 고개를 내밀며 맵시를 뽐낸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살가운 바람으로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야생화다.


바람이 많아서 풍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원래는 ‘楓島’였다고 한다. 단풍이 아름다운 섬이란 의미다. 실제로 섬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가을 되면 섬 전체를 노랗게 물들인다. 봄에는 형형색색의 야생화로, 가을엔 노란색의 단풍으로 뒤덮인 섬이었다. 그러던 풍도가 ‘豊島’로 바뀌었다. 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의미는 좋지만 바뀐 경위가 영 언짢다. 일제가 청일전쟁을 벌이기 직전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해군을 무찌르고 강점하면서 이름을 자기네들이 흔히 쓰던 풍도로 바꿨다고 한다.


풍도바람꽃은 향토식물학자 김재길씨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2009년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학계에 알려진 이후 2011년 1월 풍도바람꽃으로 정식 명명됐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바람꽃이 너무 많다. 변산바람꽃, 쌍둥이바람꽃, 만주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등등. 초봄 살가운 바람부터 여름 후끈한 바람까지 맞으며 핀다.


바람꽃은 아네모네속에 속한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신화에서 꽃의 여신인 플로라의 시녀. 플로라의 연인이던 바람의 신이 아네모네를 좋아하게 되자, 플로라의 질투로 꽃이 됐다. 바람의 신이 주위를 맴돌며 어루만져주는 바람 많은 곳을 좋아한다. 그리스어로 아네모네는 ‘바람의 딸’이다. 꽃말은 ‘사랑의 괴로움’, ‘허무한 사랑’이다. 바람은 원래 괴롭고 허무한가.


 

2008년 3월 문순화 사진작가가 풍도에서 풍도바람꽃 군락을 렌즈에 담았다.


문순화 사진작가가 풍도바람꽃을 처음 만난 건 2004년 3월. 한창 야생화 찍으러 전국을 누비고 다닐 때 부여에 사는 아는 교사가 “풍도에 한 번 가봐라. 꽃이 엄청 많더라”고 알려줬다. 그때는 2003년 8월. 이미 문 작가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문 작가는 한국 최초로 야생화 달력을 촬영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몇 년에 걸친 그의 야생화 달력이 초기 야생화붐에 일조했는지 모른다.


풍도에 첫 발을 디딘 문 작가는 민박을 하면서 섬 주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주민들이 “봄에는 야생화가 뒷산을 온통 뒤덮고 있다. 한 번 와서 보라”고 한 말을 잊지 않고 이듬해 3월에 다시 찾았다. 마을 뒤 후망산엔 정말 온갖 꽃들이 만발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2008년엔 고 이영노 박사와 함께 갔다. 이 박사는 일부를 채집, 일본과 중국까지 직접 가서 표본 검사를 통해 풍도 고유종 여부를 파악했다. 그러던 중 다른 학자에 의해 먼저 학계에 보고된 듯 등록작업을 중단했다고 문 작가가 전했다.


현진오 박사와도 2012년 3월 풍도바람꽃을 보기 위해 찾았다. 그래도 당시까지는 대군락을 이룬 곳이 많았다. 날이 갈수록 군락수도 줄고 개체수도 줄어들었다. 반대로 찾는 사람은 해가 갈수록 늘었다.


2012년엔 워낙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주민들이 드디어 “쓰레기 수거비용” 명분으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곳을 숱하게 방문한 문 작가도 “주민들의 그런 조치를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문 작가는 “서식지에서 채집해서 옮겨 심으면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야생화를 꺾고 채집해서 가져가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풍도바람꽃이 소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지의 햇빛이 잘 드는 습윤한 지역에 서식한다. 크기는 높이 10cm 정도 자란다. 꽃은 흰색이며, 3월부터 개화한다. 변산바람꽃과 다른 점은 풍도바람꽃이 꽃잎의 모양이 넓은 깔때기형으로 길이 2.5~3.7mm, 너비 2.4~3.5mm로 더 크다. 꽃잎의 모양이 변산바람꽃은 거의 U자형의 깔대기 모양인 반면, 풍도바람꽃은 V자형 깔대기 모양이다.’


학명 Eranthis pungdoensis B.U. Oh

피자식물문

쌍떡잎식물강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3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라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를 연재한다.

 

출처 / 월간 [569호] 20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