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33) 섬노루귀(울릉도)]

cassia 2017. 1. 31. 19:29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㉝ | 섬노루귀(울릉도)] 줄기가 노루귀 닮은 울릉도 고유종

글·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문순화 작가

입력 : 2017.01.31 12:41 [567호] 2017.01

 

 

육지식물보다 훨씬 커… 햇빛 없는 숲속 근처 많이 서식
 

울릉도는 식물의 보고(寶庫)다. 눈·비 많고 따뜻한 날씨 덕분에 희귀한 식물들이 많이 서식한다. 육지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식생을 자랑한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나 야생화 사진작가들은 “울릉도 섬은 작지만 식물은 크다”고 말한다.


섬노루귀는 울릉도 특산식물이다. 어디서 들었을 법한 흔한 그 식물은 아마 그냥 노루귀일 가능성이 높다. 울릉도 특산식물들의 이름에는 ‘울릉’, ‘우산’, ‘섬’, ‘큰’, ‘왕’ 중 한 가지 수식어가 꼭 붙는다. 섬노루귀도 그중의 하나다. 알고 보면 다 비슷한 의미다. 먼저 울릉도의 옛 이름이 우산국(于山國)이니 울릉과 우산은 같은 뜻이다. 또 우리나라 식물명에 들어가는 ‘섬’은 거의 울릉도를 지칭한다. 울릉도의 특별한 기후는 식물들을 뭍에서보다 크게 성장시킨다. ‘왕’이나 ‘큰’이 들어간 이유다. 이들 대부분이 울릉도 특산종이다.


섬노루귀는 꽃이나 잎의 지름이 보통 노루귀보다 3배가 넘고, 너비는 10배, 면적은 무려 30배나 된다. 이 정도면 ‘섬’이 ‘왕’이나 ‘큰’ 접두어와 의미가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섬노루귀는 잎 모양마저 삼각형의 울릉도 땅모양을 쏙 빼닮았다. 지도가 없을 때 섬노루귀의 잎을 들고 울릉도를 설명해도 될 정도다. 잎자루가 나오는 오목한 곳은 나리분지를 닮았다. 섬노루귀는 온난한 기후 덕에 사시사철 푸른 이 섬을 닮아 새 봄에 꽃을 피울 때까지도 묵은 잎이 푸르게 살아 있다.
 

노루귀는 제주도부터 함경도까지 우리나라 전역에 생육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이 필 때면 긴 흰털이 많이 나있는 줄기 모양이 노루의 귀와 비슷하다고 해서 노루귀라고 명명됐다. 그중에서 특히 크고 울릉도에서만 서식하는 노루귀를 섬노루귀 또는 큰노루귀라고 부른다. 실제로 섬노루귀는 노루귀보다 꽃봉오리를 보호하는 포엽이 꽃받침 잎보다 훨씬 크다. 이것도 일제시대 일본인 나카이에 의해 학회에 처음 보고됐다. 당연히 학명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문순화 사진작가는 1995년쯤 울릉도에 가서 처음 섬노루귀를 접했다. 울릉도의 야생화만을 담아 책을 낼 계획이었다. 매년 4월, 열흘쯤 울릉도에 머물며 섬 곳곳의 야생화와 풍경을 필름에 담았다. 5년 이상을 반복했다. 야생화 이름도 정확히 모를 때였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 현진오 박사가 “울릉도 야생화는 무조건 찍어 둬라. 육지의 식생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중에 전부 식별해 주겠다”고 해서 꽃이란 꽃은 다 찍었다. 책을 펴낼 계획은 경북대 교수가 한두 달 전 먼저 발간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런데 문 작가가 찍은, 문 작가만이 보유한 울릉도 가지더부살이 사진이 버젓이 그 책에 실려 있었다. 그것도 고 이영노 박사 제공으로 돼 있었다. 원래는 문 작가가 찍은 사진을 이영노 박사의 도감에 제공하면서 문순화 작가 제공으로 돼 있었으나 경북대 교수가 이것을 복사하면서 이영노 박사 제공으로 허가도 없이 바꿔버린 것이었다. 문 작가는 전화로 항의했다. 그 교수는 “죄송하다, 몰랐다. 잘못했다”고 백배사죄했다. 문 작가는 “내 사진만 확인하면 됐으니 어디 게재됐는지 무슨 상관이냐”며 그냥 넘어갔다고 했다.


문 작가는 5년 이상 울릉도 야생화를 담은 결과, 200종 이상의 야생화 사진을 보유하게 됐다. 독보적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책을 내는 바람에 보유하고 있던 울릉도 사진을 포함한 모든 야생화와 산 풍경 필름 20만 장가량을 환경부에 넘겨줬다. 아직 문순화 사진작가 이름으로 책 한 권 나오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여러 저자가 낸 도감 일부엔 ‘문순화 제공’이란 이름이 간혹 눈에 띌 뿐이다.


도감에 소개한 섬노루귀는 다음과 같다.


‘울릉도 산지의 습기가 많은 곳이나 햇빛 없는 숲속 근처에 많이 자란다. 뿌리와 줄기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자라고 뿌리에는 마디가 많다. 마디마다 잔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잎은 길이 8~10cm, 너비 15cm로 모두 뿌리에서 모여 난다. 꽃받침은 6~8개의 긴 타원형이 꽃잎처럼 보인다. 3~4월에 꽃이 피며 잎이 나오기 전에 꽃대가 먼저 나오고 꽃은 흰색이나 분홍색을 띤다. 꽃대의 길이는 6~12cm 정도이고 긴 털이 있다. 열매는 수과로서 방추형이고 털이 없으며 길이 5mm 정도이고 밑부분이 총포에 싸인다.’
 

학명 Hepatica maxima Nakai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2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라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를 연재한다.


출처 / 월간 [567호] 20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