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7) 지네발난

cassia 2014. 8. 26. 04:23


햇살 드는 바위에서 진주처럼 빛나는 꽃봉오리
1970년대 후반 제주도를 찾은 문순화 선생은 산방산을 오르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바위에 들러붙은 독특한 덩굴식물에 분홍빛이 도는 하얀 꽃들이 진주처럼 맺혀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지금까지 접한 적 없던 야생화를 만난 그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이것이 ‘지네발난’과 문선생의 첫 대면이었다.

“제주도는 육지와 식생이 확연히 다르지만 ‘지네발난’을 본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사진을 찍은 지 몇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바위에 붙어서 사는 난초과 식물로 꽃이 완두콩만 하게 작지만 정말 아름답고 품위가 있습니다.”


월간산 DB.

‘지네발난’은 ‘지네난초’라고도 불리며 햇볕이 잘 드는 바위벽이나 나무에 붙어서 사는 착생난초다. 길이 약 20cm로 줄기는 가늘고 길며 단단하다. 기는줄기로서 가지를 드문드문 내고 이곳저곳에서 굵은 뿌리를 내린다. 7~8월에 연한 붉은빛 꽃이 피는데, 잎집을 헤치고 나오는 꽃대 끝에 1개가 달린다. 열매는 곤봉처럼 생긴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의 삭과로서 8월에 익으며 길이 6?mm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전남 지방, 일본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지네발난은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이 지네가 기어가는 듯해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예전에는 전남 일대의 암벽지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특히 목포 유달산 암벽지대에 대규모 자생지가 있었다. 바닷가에 바위가 발달되어 있는 유달산의 환경은 이 난초가 살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과거에는 꽤 많은 개체들이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람들의 눈에 띈 후로 자생지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현재는 아주 소규모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채취하는 사람이 많아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처음 본 이후 남해안을 다니면서 이따금 이 난초를 발견했습니다. 진도와 외나로도, 고흥 등 주로 전남 지역의 섬이나 외딴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남해안이라도 경상도 쪽에서는 이 ‘지네발난’을 본 적이 없습니다.”


꽃명 | 지네발란 / 학명 | Cleisostoma scolopendrifolium (Makino) Garay / 분류 | 현화식물문> 백합강> 난초목> 난초과> 지네발란속 / 분포지역 | 전라남도, 제주도, 일본 / 개화시기 | 7~8월 / 크기 | 길이 약 20cm.

문순화 선생이 발견한 군락지들은 그리 큰 것들은 아니었다. 양지바르고 건조한 바위 표면에 자생하고 있으며 커봐야 한 평 남짓한 규모였다. 예전에는 상당히 큰 군락지들이 여러 곳에 있었다고 전해 오는데 지금은 보기가 쉽지 않다. 이 개체가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관상용 난으로 채취하는 이들 때문이다. 현재 국내의 풍난 자생지가 멸절해 버린 것처럼 지네발난 역시 우리 땅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식물이다.

“예전에 우연히 발견해 촬영한 군락지를 개화시기에 맞춰 다시 찾아가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 난도 사라집니다. 이렇게 자생지가 쉽게 훼손될 바에는 차라리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문 선생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전남의 섬 산 바위지대에 지네발난 군락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이 지역을 찾는 등산인들에게 “혹 산행하다 지네발난을 발견하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만 담아가며 캐가는 행동은 하지 말아 달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해 이런 희귀 자생종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멸종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1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 연재를 시작한다.

 



출처 : 월간산 2014년 08월호
글·김기환 차장
사진·문순화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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