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9) 한라구절초

cassia 2014. 11. 26. 04:33


 
한라의 거친 바람에 바짝 엎드려 핀 순수한 분홍색 구절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인 들국화. 가수 이름부터 술, 시, 영화 제목에 이르기까지 들국화는 우리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꽃이다. 수많은 침략과 억압을 이겨내고 기어코 다시 일어나 발전된 나라를 이룩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는 꽃인지라 더욱 사랑받는 꽃이다.

하지만 식물도감에서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들국화는 말 그대로 ‘들에서 피는 국화’란 뜻이다. 통상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은 구절초를 말한다. 쑥부쟁이, 해국, 감국, 산국 등도 국화에 포함된다. ‘구절초’는 약으로 쓰는 이름을 그대로 부른 것이다. 가을에 채 꽃이 피지 않은 식물을 잘라 햇볕에 말려 약으로 쓰는데, 5월 단오가 되면 마디가 다섯이 되고,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 즉 구절이 되며, 이때 이 꽃을 잘라 쓴다고 해서 구절초라 부른다.


구절초를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르는데, ‘흰 꽃이 신선보다 더 돋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고, ‘신선이 어머니에게 주는 약초’라는 해석도 있다. 구절초의 꽃말은 ‘고상함, 밝음, 순수, 우아한 자태, 어머니의 사랑’ 등의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구절초만 해도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 등 그 종류가 30여 종에 이른다. 그중 문순화 작가가 “가장 희귀한 꽃”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한라구절초다.

“한라구절초는 산림청에서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로 분류한 꽃입니다. 지금까지 한라산에서만 발견되었죠. 저는 1990년 9월 백록담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이 꽃을 발견했습니다. 돌무더기 사이에서 두 개체 정도를 발견했지요.”

문 작가는 처음에는 꽃만 보고 국화가 아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땅에 바짝 엎드려 핀 모습과 유난히 분홍빛을 띠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 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학자들의 자문을 구한 결과 이 꽃이 한라구절초임을 알게 되었다.

“꽃의 키가 작다 보니 백록담 풍경과 어우러지는 사진을 찍기 힘들었어요. 백록담의 풍광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한라구절초는 작은 점처럼 나왔어요. 그래서 백록담과 어우러지게도 찍고 바위틈에 핀 꽃만도 찍었죠.”


꽃명 | 한라구절초 / 학명 | Dendranthema coreanum (H.Lev. & Vaniot) Vorosch / 분류 | 피자식물문> 쌍자엽식물강> 초롱꽃목> 국화과 / 분포지역 | 한국(한라산) / 개화시기 | 7~9월 / 크기 | 줄기 높이 약 20cm, 꽃 지름 약 5~6cm.

한라구절초는 해발 1,300m 이상의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한라산 특산 식물이다. 줄기나 잎이 다른 종류에 비해 두툼하고 깃털 모양으로 가늘게 갈라지는 특성을 지닌다. 분홍색과 흰색 꽃이 피는데, 분홍 꽃은 처음에는 짙은 분홍색으로 꽃이 피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옅은 분홍으로 색이 변한다.

구절초는 생명력이 강해서 하나만 심어두어도 몇 해만 지나면 무리를 이룬다. 문 작가는 2000년 초 마지막으로 백록담에서 한라구절초를 확인한 후 다시 찾지 못했으나 요즘은 양육에 성공해 용인 한택식물원, 포천 평강식물원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개체를 옮겨와 인공적으로 재배한 것일 뿐, 야생에서 자라는 한라구절초는 아직까지는 지리산, 설악산 등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오로지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만 볼 수 있다.  

한라구절초의 꽃 가운데에는 벌집처럼 정교한 모양의 노란 통꽃이 있어 수수한 가운데서도 화려함을 뽐낸다. 특히 바람이 많은 제주 고산기후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땅에 붙듯 바짝 엎드려 피는 모습은 마치 분재처럼 한라산의 바위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만약 한라산에서 한라구절초가 사라지면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야생 한라구절초는 볼 수 없을 거예요. 제가 처음 한라구절초를 발견했던 지역은 현재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환경부와 문화재관리국,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의 허가를 받고 갈 수 있게 되어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또 모르지요. 그 사이 누군가 욕심 때문에 뿌리째 다 캐어 갔는지요. 항상 강조하듯 야생화는 야생에 있을 때 야생화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1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 연재를 시작한다.

 



출처 : 월간산 2014년 11월호
글·손수원 기자
사진·문순화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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