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손로원(1911~73)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와 새파란 풀잎, 열아홉 시절의 이미지들은 적절할 뿐 아니라 연결 또한 유려하다. 이어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과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가 펼쳐져 생생함을 더한다. 여기에 곡조까지! 이만 한 '국민 애송시'가 또 있는가. 그리움이고 슬픔이되 너무 모질지 않다. 손로원은 '귀국선' '고향의 그림자' '에레나가 된 순희' 등 명품의 가사를 썼던 사람. 1953년에 지어져 이듬해 박시춘 작곡, 백설희의 노래로 발표되었다. 좋은 노랫말은 그 자체로 좋은 시이며, 시는 좀 더 노래 불려야 한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2017.04.08 (목)
봄날은 간다 - 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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