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여울」(낭송 : 김종길)
여울
김종길
여울을 건넌다.
풀잎에 아침이 켜드는
개학날 오르막 길.
여울물 한 번
몸에 닿아 보지도 못한
여름을 보내고,
모래밭처럼 찌던
시가(市街)를 벗어나,
길경(桔梗)꽃 빛 구월의 기류(氣流)를 건너면,
은피라미떼
은피라미떼처럼 반짝이는
아침 풀벌레 소리.
● 시. 낭송 – 김종길: 192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로 등단. 시집『성탄제』『달맞이꽃』『해가 많이 짧아졌다』등이 있으며, 목월문학상, 이육사 시 문학상, 청마문학상 등을 수상함.
● 김종길 「여울」을 배달하며-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이 시를 처음 읽었는데,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시각과 청각이미지가 빛나는 앞의 두 연과 마지막 두 연이 유난히 저를 사로잡았지요. 저는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개학 날 오르막길은 물살의 폭이 좁고 가파른 여울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가는 아이들은 여울 속 자갈인지도 모른다’ ‘은피라미떼처럼 반짝이는 풀벌레소리는 교실 안의 소란스러움을 말한 것이다’ 시인의 의도와 상관없는 혼자만의 오독도 때로는 공부가 되더군요. 물론 길경(桔梗)꽃이 도라지꽃이라는 걸 모를 때였습니다. 그저 늦여름이나 초가을 부근에 피는 꽃이겠거니 여겼지요. 나중에 김종길 선생님을 뵙고 나서도 문학 소년의 오독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워서요.
문학집배원 안도현. 2007. 9. 3.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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