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극,「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낭송: 유정아)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 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 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 숲
새끼손가락 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 출전-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 문학동네
● 김남극,「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를 배달하며
이 지극히 순정한 시를 읽으며 시인의 첫사랑을 생각합니다. 첫사랑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어서 시인은 첫사랑을 정면으로 만나지 못하고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다볼 뿐입니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슬쩍 넘겨다보는 행위 속에 숨은 작은 설렘과 떨림 때문이지요. 그 미묘한 감정을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허튼 약속처럼 들리는/곤드레”에 비유하면서 시인은 독자의 귀를 단번에 잡아당깁니다. 곤드레를 꺾을 때 난다는 소리가 제게는 왜 이리 크게 들리는 걸까요?
문학집배원 안도현 2007-05-21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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