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성미정, 「무상한 나라의 앨리스」(낭독, 박리나)

cassia 2016. 12. 23. 03:54

성미정, 「무상한 나라의 앨리스」(낭독, 박리나)

 

 


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성미정


늦었구나 앨리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두운 꿈을 향해
가볍게 다이빙하던 네가 기억이
무성한 나이까지 와버렸구나
짭짤한 토마토와 알짜란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토끼 굴의
입구 같은 봄밤을 헤매는구나


알짝지근한 라일락 향기에 취해
집으로 가는 길도 잊어버리고
토끼처럼 달리려는 앨리스여
무릎이 살짝궁 쑤시는 하얀
여왕님이 돼버렸구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늘 멀리 있기에*
오늘도 늦었구나 앨리스
머리끝까지 숨이 차오르도록
뒤쫓아가도 이곳은 기억만
무상한 나라일 뿐


다시 오니 이 봄밤 너의 미소는
체셔 고양이의 그것처럼 하늘에
매달려 알다가도 모를 이 나라의
초승달처럼 치켜올라가는구나


*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한 구절에서 빌려옴.


작품 출처 : 성미정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일반판)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문학동네, 2011.
 

성미정 │ 「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배달하며…
 

    ‘앨리스’도 나이를 먹는군요. 시인의 발랄하고 예리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쓴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도 깜짝 놀라, 깊고 긴 잠에서 깨어날 것만 같습니다. “무릎이 살짝궁 쑤시는 하얀/ 여왕님”이 된 앨리스라니요. “기억만/ 무상한 나라”에 사는 앨리스라니요. 아무튼, 인생무상을 새삼 알게도 해주는 ‘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문학집배원 박성우 2016-12-22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