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최하림, 「모카 커피를 마시며」(낭송 / 문태준 )

cassia 2016. 12. 6. 10:07

최하림, 「모카 커피를 마시며」(낭송 / 문태준 )

 

 

 

모카 커피를 마시며

 

최하림

 

이마 넓은 가을이 찾아오면

우리 마음은 둥글어진다 거년에

입다 둔 무명으로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있으려니

보이지 않게 먼지들이

국화문 벽지에 쌓인다

아내가 모카 커피를

타가지고 오는 소리 들린다

모카 향내는 색다르다 아내는

향내를 조금 쓰게 타올 때도 있고

조금 달게 타올 때도 있다

내 기분에 알맞게는 하지 못한다

아내는 내가 아니므로 그렇다

아내는 내가 아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산다 우리의 개성인 모서리들이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모서리들이

닳아지고 모서리들이 정다워지면서

죽음 가까이 죽음처럼 둥글게

감정이 고인다 감정이 가을잎 같다

나는 커피를 마신다 커피 맛은 쓰다

아내는 사과를 쟁반에 받쳐들고 올 때도 있다

 

홍옥이 가을에는 향기롭다

나는 부사가 좋을 때도 있고 골덴이 좋을

때도 있으련만 말을 않고

홍옥을 먹는다 홍옥 냄새가

입 안을 감돌고 붉은 빛깔은 혀를

감칠나게 한다 향내가 감정이 된다

 

●시 / 최하림 –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목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등이 있음. 조연현문학상, 이산문학상, 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 / 문태준 – 시인. 문학집배원.

●출전 /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생각의 나무

●음악 / 배기수

●플래시 / 신문희

●프로듀서 / 김태형

 

최하림, 「모카 커피를 마시며」를 배달하며

 

가을에는 향기가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져내려 잘 고입니다. 가을의 차고 투명한 공기 속에서는 미세한 먼지가 내려앉는 것조차 잘 보이듯이. 누군가 내게로 가까이 오는 발자국 소리도 잘 들립니다. 가을의 바닥을 지그시 누르며 그이는 옵니다. 오되, 와서 자신의 향내를 부려놓을 뿐 옳으니 그르니 참견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가을에는 판연하게 다른 내면들이 함께 하나의 벤치에 앉습니다. 그냥 그이가 내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합니다. 부사를 좋아하지만 홍옥을 먹어도 좋습니다. 조금은 내 기분에 알맞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을에는 빛깔과 향내가 감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감정의 이마가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쟁반에 가을을 받쳐들고 당신에게로 오고 있습니다.

 

문학집배원 문태준 2009. 10. 12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