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나희덕,「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낭송 박리나)

cassia 2016. 11. 11. 09:41

나희덕,「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낭송 박리나)

 

 


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


나희덕


주춧돌을 어디에 놓을까
여기쯤에 집을 앉히는 게 좋겠군
지붕은 무엇으로 얹을까
벽은 아이보리색이 무난하겠지
저 회화나무가 잘 보이게
남쪽으로 커다란 창을 내야겠어
동백숲으로 이어진 뒤뜰에는 쪽문을 내야지
그 옆엔 자그마한 연못을 팔 거야
곡괭이를 어디 두었더라
돌담에는 마삭줄이나 능소화를 올려야지
앞마당에는 무슨 꽃을 심을까
대문에서 현관까지 자갈을 깔면 어떨까
저 은행나무 그늘에는
나무 의자를 하나 놓아야지
식탁은 둥글고 큼지막한 게 좋겠어


오늘도 집을 짓는다
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 허공에


생각은 돌담을 넘어
집터 주위를 다람쥐처럼 드나든다
집을 이렇게 앉혀보고 저렇게 앉혀보고
벽돌을 수없이 쌓았다 허물며
마음으로는 백 번도 넘게 그 집에 살아보았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그 땅에는
이미 다른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


-작품 출처 :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시집,『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나희덕, 「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를 배달하며
 
마음속으로, 몇 채나 되는 집을 지어보셨나요? 한 열 채쯤요? 한 스무 채쯤요? 비록 ‘허공’에 짓는 집이기는 하지만 꿈꾸는 집을 앉히다 보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져 오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미 십여 년도 전에 쓱쓱 그린 연필 모양의 뾰족한 집을 제 방 창문 위에 붙여놓고 있는데요. 그 ‘연필집’을 강가 소나무 곁에 세워보기도 하고 강마을 뒷동산 앞에 세워보기도 해요. 연필집 창틀에 턱을 괴고 앉아 강물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뭇별을 헤아려보기도 하죠. 하지만 그게 다예요.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그 땅에는/ 이미 다른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 시인이 하는 말에 ‘그렇네요. 정말 그렇네요.’ 속으로 기분 좋은 맞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문학집배원 박성우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