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고성만「슬픔을 사육하다」(낭송 고성만)

cassia 2016. 10. 30. 03:14

고성만「슬픔을 사육하다(낭송 고성만) 

 

 


슬픔을 사육하다

 

고성만


눈코입 오목조목한 여자를 얻어
재우고 입히고 먹이고 학교 보내고 싶어

그 여자 결혼하여
그 여자 닮은 딸 낳으면
저녁 문간에 걸어둔
가녀린 등불 하나

왜 가끔 심청 생각이 나나 몰라 젖동냥 길러주신 아비께 눈물 밥 지어 올리고 상머리에 앉아 이것은 밥이요 이것은 반찬이요 떠 넣어드리는, 제 몸 팔아 아비 개안시키는 자식 되었다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입 안 가득 하모니카를 불다가

 

어느 추운 겨울날 부모 살릴 생명수 구하러 홑껍데기 누더기 걸치고 고꾸라졌다 일어서서 서천서역국 찾아가는 바리데기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면서

 

지긋이 물속에 잠겨
초점 없는 눈동자 위로 툭
떨어지는 꽃송이들
황금색 몰약 같은 꿈 다시 꾸고 싶어


출처 : 슬픔을 사육하다 『슬픔을 사육하다』, 천년의시작 2008

 

詩, 낭송- 고성만 : 1963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199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함. 시집으로 『올해 처음 본 나비』『슬픔을 사육하다』등이 있음.

 

고성만「슬픔을 사육하다」를 배달하며


심청이와 바리데기는 병든 아비를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바친 딸이나 누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지요. 설화 속의 그녀들은 지금도 “저녁 문간에 걸어둔 가녀린 등불”처럼 황량한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고성만 시인의 시들은 이 땅의 누이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와도 같아서 슬픈 누이 하나 마음속에 살뜰하게 길러 세상에 공양하고 싶어 합니다. ‘사육하다’는 말의 어감이 다소 걸리긴 하지만, 여기서 시적 화자는 더 이상 여성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남성성의 대변자가 아닙니다. 순결한 슬픔의 힘으로 그는 자기 안의 여성성을 발견해갑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조용히 손을 잡는 광경입니다.

 

2009. 1. 26. 문학집배원 나희덕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