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낭송 송경동)

cassia 2016. 10. 25. 05:49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낭송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 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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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시선310

詩, 낭송 – 송경동: 1967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2001년『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함. 구로노동자문학회와 전국노동자문학연대 등과 함께 활동하며 시와 산문으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음.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배달하며 

 

송경동 시인은 “나도 / 여느 시인들처럼 /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나는 늘 거리에 서야만 한다”며 고단한 노릇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늘 함께 해왔지요. 하지만 정직하고 겸손한 그에게 ‘배후’나 ‘선동’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인을 움직이는 힘은 어떤 조직이나 이념이 아니라, 저 살아 숨쉬는 자유의 바람과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무너진 담벼락과 걷어 채인 좌판을 통해 우주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노래해 온 셈입니다.

 

2008. 7. 7. 문학집배원 나희덕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