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서대경,「일요일」(낭송 정인겸)

cassia 2015. 11. 17. 08:50

서대경,「일요일」(낭송 정인겸)

 

서대경, 「일요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목욕탕 앞이었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영 슈퍼 간판 아래 한 여인이 비눗갑을 손에 든 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나는 이발소 거울 앞에 앉아 그녀의 젖은 머리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면도칼이 나의 뒷덜미를 슥슥슥슥 긁을 때 하얀 와이셔츠 자락이 내 뒤에서 유령처럼 춤추고 있었다

전국 노래자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후 마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허공으로 상어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시_ 서대경 –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시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가 있다.

낭송 – 정인겸 – 배우. 영화 <암살> 등에 출연.

▶  출전_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문학동네)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서대경,「일요일」을 배달하며

 

어느 가을밤, 술집 화장실에서 원숭이를 토했다는 시인! 그의 일요일 풍경은 뜻밖에도 일상적인 스케치이다. 이발은 무성해진 시간의 잡초를 다듬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눈이 내리는 풍경에다 일요일과 이발을 겹쳐 놓았다. 서민적인 간판이 걸린 골목안 풍경, 비눗갑을 든 그녀의 젖은 머리, 눈이 내리고 유령처럼 흰 옷자락을 펄럭이며 나의 뒷덜미를 긁는 면도칼이 슥슥슥슥... 보는 것, 즉 시각으로 풍경을 이끌어 가다가 슥슥슥슥 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시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전국노래자랑과 미사로 채워지는 평범한 일요일을 넘보는 두려운 상어 떼! 그리하여 그는 고전적 서정시제 “가을 밤”에서도 반복과 불안과 흉내와 억압의 원숭이를 토했다고 고백한 것 같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바람&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