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낭송 김선우)

cassia 2011. 12. 26. 04:35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낭송 김선우)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_ 백석 -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백기행. 1935년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등단. 1936년 첫 시집 『사슴』을 출간했고, 같은 해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에서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함. 만주를 거쳐 안동, 신의주에 머물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 정주로 돌아가 집필 활동에 매진함. 6.25 전쟁 후에도 북한에 남아 다양한 작품활동을 함.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 발표. 낭송_ 김선우 - 시인.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등이 있음. 현대문학상을 수상함. 출전_ 『백석시전집(白石詩全集)』(창비)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배달하며 항간에 떠도는 백석의 사진이 보여주듯, 그는 언론사에서 근무하다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했던 전형적인 지식인 모던보이였지요. 그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것이 그의 말년의 불우를 이미 예정했던 걸까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간 백석은 남북의 왕래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게 된 이후 북한의 사람으로 살아야했지요. 50세 이후 일체의 창작활동이 중단된 채 83세에 죽었다고 알려진 백석. 해사한 꽃미남 같은 그 사진 속 얼굴과 쓰고 싶은 것들을 맘껏 쓰지 못한 채 말년을 맞은 노인 백석이 함께 떠올라 쓸쓸해집니다. 한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주에 백석을 배달합니다. 가난한 나와 아름다운 나타샤의 대조가 주는 묘하고 아름다운 비감이 있는 시이지요. 푹푹 눈이 나립니다. 백석의 이 시가 아니었다면 ‘눈이 푹푹 나린다’는 표현은 아직껏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가난하여 아름다운 나타샤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할 수 없습니다. 나타샤와 함께 출출이(새 이름입니다, 흔히 뱁새라고 한다지요^^) 우는 산골로 가 살자고 말하고 싶지만, 가난한 나는 자신이 없어 소주나 마십니다. 그런 내 마음 속에 나타샤가 다가와 시인보다 더 대담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 우리 산골로 가. 산골로 가는 게 세상한테 지는 건 아냐.” 시인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나타샤의 입을 통해 하고 있군요. 그의 간절한 마음이 읽혀집니다. “흥, 세상 같은 건 더러워버리는 거야” 세상에 버려지지 말고 우리가 먼저 더러운 세상을 버리자고, 그렇게 우리의 사랑을 지키자고 말하는 이 마음. 이들의 사랑을 축복하듯 어디서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웁니다. ‘응앙응앙’ 우는 흰 당나귀라니. 이 역시 백석이 없었다면 아직껏 우리 시에서 드러난 적 없는 표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마가리(오두막집)로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현실과 꿈의 괴리, 그것은 백석에게 짐 지워진 운명이었을까요. 백석을 떠올릴 때 늘 함께 떠오르는 사람, 자야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들은 초강력 콩깍지가 씐 듯 사랑했지만 백석은 북한에서 죽고, 남한에서 엄청난 돈을 번 그녀는 천억 원대의 재산을 법정스님께 시주해 오늘날의 길상사가 세워졌다지요.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자야여사가 죽기 며칠 전 기자가 묻는 이 말에 자야여사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쓸 거야. 알고계시지요? 천억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숨결 한 줄보다 못하다는 것을.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