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최정례,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낭송 최정례)

cassia 2011. 12. 19. 04:38
최정례,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낭송 최정례)
    최정례,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낭송최정례) 최정례,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그러니, 제발 날 놓아줘,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든, 그러니 제발,   저지방 우유, 고등어, 클리넥스, 고무장갑을 싣고   트렁크를 꽝 내리닫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플리즈 릴리즈 미가 흘러나오네   건너편에 세워둔 차 안에서 개 한 마리 차창을 긁으며 울부짖네   이 나라는 다알리아가 쟁반만 해, 벚꽃도 주먹만 해   지지도 않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피어만 있다고   은영이가 전화했을 때   느닷없이 옆 차가 다가와 내 차를 꽝 박네   운전수가 튀어나와   아줌마, 내가 이렇게 돌고 있는데   거기서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그래도 노래는 멈출 줄을 모르네   쇼핑카트를 반환하러 간 사람, 동전을 뺀다고 가서는 오지를 않네   은영이는 전화를 끊지를 않네   내가 도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잖아요   듣지도 않고 남자는 재빨리 흰 스프레이를 꺼내   바닥에 죽죽죽 금을 긋네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도 쇼핑센터를 빠져 나가는 차들   스피커에선 또 그 노래   이런 삶은 낭비야, 이건 죄악이야,   날 놓아줘, 부탁해, 제발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날 놓아줘   그 나물에 그 밥   쟁반만 한 다알리아에 주먹만 한 벚꽃   그 노래에 그 타령   지난번에도 산 것을 또 사서 실었네   옆 차가 내 차를 박았단 말이야 소리쳐도   은영이는 전화를 끊지를 않네   훌쩍이면서   여기는 블루베리가 공짜야 공원에 가면   바께쓰로 하나 가득 따 담을 수 있어   블루베리 힐에 놀러 가서 블루베리 케잌을 만들자구   플리즈 릴리즈 미,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든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그러니 제발, 날 놔줘.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놓아 달란 말이야 시/낭송_ 최정례 -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햇빛 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함. 출전_ 『레바논 감정』(문학과지성사) 최정례,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을 배달하며 “네 그래요 통속합니다. 그래요 상투적이죠 우리의 일상이란 게. 그래서 어쩌란 말이오? 일상이라는 신파를 견뎌야하는 것도 삶 아뇨? 그 통속함마저 우리의 ‘레알’이란 말이오!” 누가 이렇게 외치는 것 같습니다. 삶이, 일상이, ‘얼음땡놀이’ 중인 것 같은 막막한 느낌이 들 때, 우리는 탈출을 꿈꾸지요. 탈출을 꿈꾼 이들 중엔 더러 정말로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시 속에 나오는 은영이처럼, 먼 나라로 탈출한 후에도 한국에서와 다름없는 일상의 상투성, 그 질긴 감옥에 다시 갇혀버릴 수도 있습니다. “은영이는 전화를 끊지를 않네” 같은 대목에서 제 시선은 오래 흔들립니다. 전화를 끊지 않네, 가 아니라 전화를 끊지‘를’ 않네, 라고 시인이 조사 하나를 굳이 더 붙여 쓸 때, 저 ‘를’ 속에 포함된 그 모든 지리멸렬한 비애의 울컥함들! 시인이 포착해내는 이런 일상의 순간들이 시로서 우리 눈앞에 다시 전개될 때, 화들짝 놀랍니다. 우리의 일상을 다시금 일깨우게 됩니다. 고마워요, 시인이여. 우린 차가운 입술에 길들여지지 않을 거예요.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