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정재학,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낭송 이문하)

cassia 2011. 11. 28. 03:25
    정재학,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낭송 이문하) 정재학,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맥박이 미친 듯이 뛰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그 칼이 내장을 드러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시_ 정재학 -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 《작가세계》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가 있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함. 낭송_ 이문하 - 배우. <블루다이아몬드>, <배반의 관계> 등에 출연. 출전_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민음사) 정재학의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를 배달하며 갈수록 우리는 어딘가 고장 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명은 발전하고 생활은 편리해져 간다는데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져 가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죽어서 가루가 떨어지고 나는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습니다. 나의 신체는 분해되어 도시 여기저기에 찢어져 걸렸습니다. 어머니가 우시네요. 아픈 나를 위해 어머니가 밥을 짓고 있습니다. 도저히 밥을 지을 수 없는 불로 밥을 짓고 있습니다. 촛불은 여린 불입니다. 어둠속 하나의 촛불은 어둠에 자신을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을 만큼만 밝습니다. 간신히 자신의 발목을 밝힐 뿐인 촛불은 그러나 내부의 빛, 마음의 빛으로 부드럽게 스며옵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간신히 빛 쪽에 몸을 붙여 촛불은 우리를 밝힙니다. 일상의 어둠에 끝내 굴복하지 않는 빛의 의지가 밥을 끓이고 있습니다. 아프고 아픈 어머니, 고맙습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