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낭송 이상협)
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아우는 큰 몸뚱이를 수술대 위에 버리고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마취되어 있다
집도의가 가리키는 모니터에 아우의 내장이
속속들이 보인다 담낭이 제거된 자리가
검붉을 뿐 내장은 아름답다 연붉은 간덩이
사이로 흐르는 핏물은 불빛에 놀라 기포를 뱉으며 급히 몸을 숨긴다
집도의는 내시경을 움직여
내장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간 한 잎 뒤집으면 나타날 것 같던
만년 순경인 아우의 내심은 보이지 않는다
상사의 모멸과 질타의 말들도 피의자를 다루던
온갖 협박과 회유의 말들도 보이지 않고
서늘한 오기도 찾을 수 없다
내장은 아름다울 뿐 더러운 일상에
물들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과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나의 손을 거부한다
담낭이 절개되고 돌들이 쏟아져나온다
강렬한 조명을 받아 돌들은 빛난다
그랬구나 내장 속에서 찾을 수 없었던
너의 내심 가슴에 맺혀
욕스러운 나날들 더욱 단단해지고
그렇게 견디어낸 아름다운 굴욕들
빛나는 돌이 되어 네 몸 속 환한
고통이었구나
■ 시_ 김윤배 - 194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등이 있음.
■ 낭송_ 이상협 - KBS 아나운서. 1TV 주말 정오 뉴스, 93.1MHz 1FM 정다운 가곡 등.
■ 출전_ 『굴욕은 아름답다』(문학과지성사)
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를 배달하며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스승님, 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혜가가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때 달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 마음이라는 것을 내놓아 보게. 그러면 내가 편하게 해 주겠네.”
마음이라는 물건은 우리 몸 어디에 있을까요?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으면서
속을 긁고 끓이고 뒤틀리게 할까요? 수술하느라 다 드러난 아우의 내장에서
마음을 찾는 시인의 모습이 꼭 어린 아이 같습니다. 마음이 내장 어딘가에 붙어 있어서
아플 때 약이나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참동안 마음을 찾았으나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미 자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네.”
/ 출처 : 출처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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