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스크랩] 나희덕, 「그의 사진」 낭송 권지숙

cassia 2011. 2. 14. 04:42
    나희덕, 「그의 사진」(낭송 권지숙) 나희덕, 「그의 사진」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변함없이 웃고 있지만 실은 남아있는 물기를 거두어들이는 중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사진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사진을 보며 거실에 들어서는 날들, 그 고요 속에서 겨울 열매처럼 뒤늦게 익어가는 것도 있으니 평화는 그의 사진과 함께 늙어간다 모든 파열음을 흡수한 사각의 진공 속에서 그는 아직도 살고 있는가 마른 잠자리처럼 액자 속에 채집된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그러나 파도소리 같은 건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웃고 있지만 액자 위에는 어느새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볕이 환하게 드는 아침에는 미움도 연민도 아닌 손으로 사진을 닦기도 한다 먼지가 덮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걸레가 닦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 시_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송_ 권지숙 - 배우. 연극 <루나자에서 춤을>, <기묘여행> 등 출연. ■ 출전_ 『야생사과』(창비) 나희덕, 「그의 사진」을 배달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한동안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죠. 떠난 사람은 분명히 눈앞에 없는데, 그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손에 만져지는 것 같은 체험이요. ‘그’는 떠나고 ‘사진’만 남아 있습니다. 먼지가 쌓여도 걸레로 닦아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진은 단지 종이일 뿐인데, 그 종이 속의 웃음과 눈물과 목소리는 실제처럼 생생합니다. 그 종이 속에서 신기하게도 살아있는 ‘그’가 계속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떠나고 없는데도 ‘그’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됩니다. 이별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인 가 봅니다. 새벽산책 / 출처 :
    출처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글쓴이 : 새벽(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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