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실

[어린이 날 특집] 한국 창작 동요 80년사

cassia 2005. 12. 4. 21:43
[어린이 날 특집] 한국 창작 동요 80년사


1968년 창경궁에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인 ‘반달’
노래비가 세워졌다. 최초의 동요비이기도 한 이 노래비는
1984년 능동 어린이대 공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진 왼쪽
은 반달을 지은 고 윤극인 선생.

동심의 노래 ‘창작 동요’가 이 땅에 태어난 지 80 주년을 맞았다. 올해로 84 세가 되는 ‘어린이날’과는 오누이 관계다. 동요는 암울했던 일제 시대에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힘을 주는 희망의 노래였으며, 이제는 어린이 문화의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맞으며, 여든 개의 나이테를 지인 우리 동요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윤석빈 기자 binys@hk.co.kr

▲첫 창작 동요 ‘반달’의 탄생(1920년대)

1920년대에 우리 어린이들은 일본 동화를 읽고 일본 동요를 부르며 자랐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소파 방정환 선생은 당시 음악 학교를 다니던 윤극영을 찾아가 “우리에게는 창작 동요가 없으니, 동요 작곡을 통해 어린이 사랑 운동에 적극 참여해 주시오.”라고 권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나라의 첫 창작 동요인 ‘반달’이 탄생하게 된다.

그 뒤 서양 음악을 공부한 작곡가들이 동요에 관심을 갖게 되며, 그 대표적인물인 홍난파는 ‘고향의 봄’ㆍ‘낮에 나온 반달’ㆍ‘퐁당퐁당’ 등을 작곡한다.

▲ 동요의 발전과 암흑기(1930년대~1940년대)

동요가 탄생한 지 10 년도 채 안 돼 온 국민의 사랑을 얻고, 현제명ㆍ김성태ㆍ박태현ㆍ권태호 등 실력을 갖춘 작곡가들이 나옴에 따라 황금기를 맞는다.

여기에 권태웅ㆍ이은상ㆍ박목월ㆍ강소천 등 새로운 희망을 담은 노랫말을 짓는 시인ㆍ아동 문학가들도 크게 늘어난다.

1940년대에 들어서는 일제가 우리말을 못 쓰게 하는 등 탄압이 거세져 한 곡의 동요도 창작되지 못 하는 암흑의 시기를 맞는다. 어린이들은 군가만 불러야 했다.

▲해방과 동요의 부활, 그리고 전쟁(1945년~한국 전쟁)

민족의 해방으로 어린이들은 잃었던 동요를 다시 찾게 된다. 먼저 학교에서 본격적인 우리 동요를 지도하게 된다. 또 ‘새 나라의 어린이’(박태준 작곡ㆍ윤석중 작사) 등 해방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씩씩하고 밝은 기상을 담은 애국 동요도 잇달아 나온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에는 KBS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날마다 동요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사진은 1950년
대에 한용희 선생이 지도했던 '종달새 동요회' 어린이
들이 방송 녹음을 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1950년 한국 전쟁으로 또 한번의 시련을 겪게 되는데, 어린이들의 감성을 중시하는 동요 대신 반공 동요가 주를 이룬다.

▲동요의 전성기(1950년대)

전쟁이 끝난 뒤, 잿더미 속의 불씨를 살리듯 새로운 동요의 씨앗을 뿌린다. 이제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방식이 아닌 방송을 통한 본격적이 동요 보급이 활기를 띠게 된 것. 아동 문학가ㆍ작곡가ㆍ교육자가 힘을 모아 동요 보급에 앞장 서고 라디오를 통해 날마다 새 동요들이 쏟아진다. 또 현재의 ‘동요 발성법’도 자리를 잡게 된다.

▲합창단 활동과 상업 방송 시대(1960년대~1970년대)

1960년대 접어들면서 어린이 합창단의 탄생과 활동은 두드러진다.

리틀앤젤스예술단과 한국일보의 소년소녀합창단 등 전문 합창단이 창단되고, 아울러 전국의 초등학교마다 합창단이 조직돼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또 소년한국일보가 전국의 초등학교들을 대상으로 펼친 ‘교가 지어 주기 운동’도 동요 보급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상업 방송의 영향으로 동요 대신 만화 영화 주제곡이나 CM송 등을 즐겨 부르는 경향이 뚜렷해진다.

▲ 동요의 다양화 시대, 그리고 미래(1980년대~현재)

상업 방송의 거센 물결 속에 가요 등에 빠져 들고 있는 어린이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가요식 동요ㆍ국악 동요 등 다양한 동요가 만들어진다.

TV를 통해 여러 동요 프로그램이 선보였지만, 어른들의 몰이해와 어린이들의 외면 속에 잇따라 중단되고 현재는 KBS의 ‘열려라 동요 세상’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방송국ㆍ사회 단체 등에서 주최하는 각종 동요 대회가 관심을 끌고 그 영향으로 동요 작곡가와 작사가가 많이 나온 것은 동요계의 활력이 되고 있다.

우리 동요는 지난 80 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꿋꿋이 제 구실을 하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렇듯 우리 동요는 앞으로도 늘 어린이들의 좋은 친구로 새 역사를 이뤄 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열린 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의 어원  (0) 2005.12.09
메모의 힘  (0) 2005.12.05
고전 생각하며 읽기3 / 반딧불이의 무덤  (0) 2005.11.25
고전 생각하며 읽기2 /필론의 돼지  (0) 2005.11.25
고전 생각하며 읽기1 / 베니스의 상인  (0) 200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