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아름다운 글귀 모음1

cassia 2005. 10. 29. 23:20

아름다운 글귀 모음1

 

소리는 귀로 듣는 음의 진동이라고 합니다만 새벽에 움직이는 소리는 마음이라는 보자기로 감싸안아야 하는가 봅니다. 비단보다 부드럽게 어둠을 지나오는 소리는 아마 남모르게 잡혀진 님의 손목에서 느껴지는 맥박의 진동일지도 모릅니다. 이렇듯이 하루를 깨우는 새벽의 소리에서는 정갈한 피가 흐르고 있기에 늦잠을 잔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들 짜증스럽지가 않을 겁니다.
<새벽을 여는 창>중에서


오늘만큼은 고달픈 이야기는, 맥풀린 이야기는, 서러운 이야기는 모두 숨기고, 당신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발을 동동 딛으면서 온 몸을 데굴데굴 굴릴 수 있는 그런 이야기만 엮어 주리라.
<당신의 바다바람> 중에서


내가 서러워 울고, 삶이 기막혀 울고, 자연이 무심하여 운다한들 무엇이 상관일까. 한잔의 막걸리에서, 참으로 볼품없는 헌 사발 앞에서도 눈물을 떨굴 수 있다면, 한 잔의 막걸리가 한 접시의 김치가 어찌 야박하며 또한 사치로울 것인가.
<막걸리 사발>중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악기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는 연주자가 되고, 연주자의 손에 기꺼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악기가 되는 세상이 이루어진다면 덜되먹은 몽상가라는 핀잔을 들어도 개의하지 않을 작정이다.
<첼로가 되고싶어라> 중에서


분수가 물줄기를 뿜어내면 예상하지 못한 변신을 보여준다. 태양 빛을 받는 낮이면 그것은 폭넓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피로연에 나서는 신부로 변한다. 밤의 조명을 받으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서는 프리마돈나가 된다. 분수는 천하지 않는 자태와 굴곡 있는 여인이 되어 우리들을 맞이한다.
<부산역 분수대> 중에서


오늘도 이놈은 무심하고 게으른 주인의 양심을 한번씩 찌르는 밉지 않는 싸움을 걸어오면서, 주면 주는 대로 주지 않으면 주지 않는 대로 하루를 버텨간다. ... 그렇지 않을까. 나 또한 조물주 앞에서는 오늘도 남겨진 삶을 이어가는 저 금붕어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것을....
<금붕어와의 싸움> 중에서


4월의 철이른 장미는 아기 손만큼 앙증스럽다. 5월의 장미는 10대 소녀처럼 떼지어 달려들어 차라리 숨이 가쁘다. 6월의 장미는 노처녀의 바람기처럼 저녁에도 피어나 어쩐지 천박하게 느껴진다. 7월의 장미는 30대 후반 여인의 체취처럼 가까이 하기에는 왠지 위험하다. 8월의 장미는 장마를 탓하며 몸을 허무는 밤의 여인이다. 9월에도 장미는 피는가. 그렇다 한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노래도 하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으니 나만이라도 그것을 가까이 하련다.
<9월에 피는 장미> 중에서


다가옴의 미학. 다가감의 미학. 그것은 나의 문을 그에게 열어주고, 그의 문으로 내가 들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들어앉도록 나의 일부를 덜어내는 것이고 내가 그것의 품에 안기기 위해 나의 몸을 가벼이 하는 일이다.
<축대와 접시꽃> 중에서


찬찬히 바라볼수록 그는 미물이 아니다. 범물(凡物)도 아니다. 바로 비범물(非凡物)이다. 반대로 나라는 인간은 범물은 커녕 미물 중에 초미물(超微物)로 추락한다.
<새벽을 부르는 미물>중에서


얼룩덜룩한 감잎이 모두 떨어지고 양상한 줄기를 드러낸 감나무가 푸른 하늘을 뒤로하고 처연하게 서 있다. 온 몸의 수액을 빨아 붉은 홍시가 된 감이 듬성듬성 혹처럼 달려있다. 메마른 나목으로 세월을 버티기에는 나무나 많은 인고의 버짐이 온 몸에 번졌다.
<가을의 적자(適者)> 중에서


사모(思慕)의 향기는 이렇게 설화 속의 눈꽃처럼 사라질 수 모르고 남아 있는 것인가 보다.
<일각수 파이프> 중에서


여인의 무릎은 그녀가 젊을 때는 한 남자의 머리를 괴고, 그의 자식이 생기면 그들의 응석을 받아주고, 후일에는 그의 손자들을 잠재우는 소담스러운 안식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무릎을 쉬 잊어버린다. 드리운 치맛자락을 붙잡고 나들이를 하던 우리들은 이렇게 하나의 고향에서 멀어져간다.
<나무 침상> 중에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만난, 그러나 어떤 이유로 스쳐 지나간 여러 사람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들이 부족해서 내가 떠난 경우보다도 내가 무심하고 못난 탓에 그들이 떠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볼펜을 꽂으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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