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磬 小理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18>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cassia 2022. 12. 21. 09:11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18>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18>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호두까기 인형' 공연 모습. 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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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 공연 모습. 매일신문 DB

아직도 망치로 호두를 깨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서 원시적인 도구로 호두를 깨는 것은 그리 세련된 풍경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터넷 쇼핑에서 파는 호두까기 인형을 구입할 것을 적극 권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1892)은 독일 작가 E.T.A.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1816)을 각색한 2막 3장의 발레 음악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3곡의 발레 음악을 작곡했고 지금까지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발레 음악으로 꼽힌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동화의 세계에 생기를 불어넣고, 발레는 동화와 음악의 환상적인 요소를 현실 무대에 화려하게 구현하면서 청중들을 동화의 세계로 불러들인다.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음악인만큼 안무가에 따라 무용도 극 전체의 분위기도 많이 바뀐다.

 

'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가장 많이 소환되는 클래식 명곡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클라라(혹은 마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고, 오빠 프란츠가 이 인형을 망가뜨린다. 모두가 잠든 밤 생쥐 군대가 나타나자 호두까기 인형은 장난감 병정들과 함께 생쥐 군대와 전투를 벌인다. 클라라의 도움으로 전투에서 승리한 호두까기 인형이 왕자로 변신해 클라라를 과자 나라로 데려간다.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 없이 관현악 모음곡으로도 자주 연주한다. 서곡-행진곡-설탕 요정의 춤-러시아의 춤(트레팍)-아라비아의 춤-중국의 춤-갈대피리의 춤-꽃의 왈츠로 이뤄진다. 이 또한 눈처럼 포근하고 사탕처럼 달콤한 세계를 들려준다. 삭막한 세상을 벗어나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받고 싶을 때 듣기 좋은 음악이 '호두까기 인형'이다. 그래서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성황을 이룬다.

 

'호두까기 인형'은 세대를 초월하는 곡이다. 아이 손을 잡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부모들도 자식을 핑계 삼아 동화의 세계에서 현실을 잠시 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당도가 높은 음악은 금방 식상해진다. 순진무구한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고 어려움이나 고통과의 대결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다.

 

니체는 그저 밝고 가볍고 명랑하기만 한 예술에 대해서 '노예의 명랑성'이라고 경멸했다. 진지함으로부터의 도피, 안이함에 대한 비겁한 자기만족은 건강과 충만, 생명력과는 거리가 먼 정신의 늙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으로 뒤섞인 비극적인 삶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달콤한 예술은 위로를 넘어 우리가 삶에 집착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욕망을 부풀리며 고뇌하고 성찰하기를 멈추게 한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유난히 당도 높은 예술 공연들이 줄을 잇는다. 이러한 예술을 니체식으로 형이하학적 위로의 예술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이연정 기자 lyj@imaeil.com

대구매일신문 입력 2022-12-19

 

https://youtu.be/mk6T0oZNOs8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꽃의 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