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시배달 - 한강,「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배달하며
이틀에 한 번 정도 밥을 합니다. 압력솥을 쓸 때도 있고 조금 수월하게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을 때도 있습니다. 언제 한번은 쌀을 씻다가 조금 먼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뜨물을 버릴 때마다 얼마간의 쌀알이 함께 쓸려나가는 것인데, 그러니 알이 작지 않고 커다란 쌀 품종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쌀알 한 톨이 참외만 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밥 한 공기에 쌀 한 톨만 담으면 되니 참 편하겠다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잘한 밥알을 씹을 때 입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감각은 사라지겠지요. 밥을 한 주걱 푸고 다시 한 주걱을 더 담는 마음도, 실수로 흘린 밥알을 주워먹는 순간도 함께 사라지겠지요.
봄이 잘도 지나고 있습니다. 봄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물론 이 봄에도 우리는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저녁을 먹어야지요. 아침에는 아침을, 점심에는 점심을 먹고요. 영원할 때까지만 영원히.
문학집배원 / 시인박준 2022.03.24(목)
출전 / 작가 : 한강,『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 지성사,2013)
[시/에세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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