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48) 김동인은 어떻게 새로운 문체를 만들어낸 것일까

cassia 2019. 11. 30. 14:45



(148) 김동인은 어떻게 새로운 문체를 만들어낸 것일까

 

김동인은 이광수와 함께 한국근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막상 김동인의 문학적 업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누구건 제대로 답하기가 어렵다. 누군가는 중,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을 되살려 '삼인칭 대명사' 사용과 '과거 시제 성립'이라는 교과서적 내용을 입에 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 뿐, 삼인칭 대명사 사용과 과거 시제도입이 왜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아울러 김동인이 그 새로운 생각을 어떻게 해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삼인칭 대명사와 과거형 시제가 우리 문학에 처음 사용된 것은 백 년 전,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1919)에서였다. '약한 자의 슬픔'은 강엘리자벹이라는 신여성이 강간과 원치 않은 임신, 유산을 겪으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김동인은 이 충격적 과정을 스케치를 하듯 세밀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여기에는 이전의 문학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체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단 그는 조선의 전통문학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그' 혹은 '그녀'라는 삼인칭 대명사를 소설에 도입했다. 아울러 전통적 문학의 주된 서술형태였던 '하더라', '하노라' 대신 과거형 서술어 '했다'로 문장을 끝맺었다. 예를 들자면 '홍길동이가 울며 집을 떠나더라'라는 문장이 김동인 소설에 오면 '그가 울며 집을 떠났다'로 된 것이었다. 이 새로운 문체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소설의 과거시제와 현실의 현재 시제가 분리되면서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가 가능해졌다.

김동인이 천재여서 '하노라'를 '했다'로 바꾸는 등의 혁명적 생각을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에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김동인은 이른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이 흡수한 서양근대문물을 몸소 체득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본에서 경험한 다양한 근대문물 중에는 소설도 들어 있었다. 그 수많은 일본근대소설을 읽으면서 이와 같은 새로운 문학을 어떻게 하면 조선에서도 이루어낼 수 있는지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일본어로 먼저 소설 내용을 구상한 후, 다시 그 내용을 조선어로 쓰는 방법을 통해 일본문학이 서양문학에서 흡수한 새로운 문학 형태를 배워갔다.

삼인칭 대명사 사용과 과거시제 활용은 물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틀림이 없다'라든가 '-라고 느낀다'라는 표현 역시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었다. 이 노력의 결과가 바로 '약한 자의 슬픔'이다. 김동인의 이 노력을 두고 '왜 하필이면 일본!'이라며 불쾌해 할 필요는 없다. 일본 근대문학을 열었던 소설가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 역시 러시아어로 소설을 쓴 후, 다시 일본어로 옮겨 쓰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문체와 문학을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대문학은 이처럼 치열한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눈물겨운 노력을 생각하면 한국근대문학에 대한 현재 우리의 존중과 관심이 너무 약한 것은 아닐까.

사진(右) : 김동인 저 '약한 자의 슬픔'이 게재된 '창조' 1919년 2월호. 국립중앙도서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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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11-30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