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46) 아홉 사람의 구름같은 꿈 이야기, ‘구운몽‘

cassia 2019. 11. 2. 10:49



(146) 아홉 사람의 구름같은 꿈 이야기, ‘구운몽‘

 

영국 출신 선교사 제임스 게일,

욕망의 허망함 깨닫고 종교적 삶 정진하는 작중 주인공 삶에 감화한 듯

한강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덕분에 최근 서양권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한국문학은 무엇이었을까.

대략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으로 추정된다. 17세기 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에서 창작된 이 소설은 1922년 'Kuunmong: The Cloud Dream of the Nine', 즉 '아홉 사람의 구름 같은 꿈'이라는 멋진 제목으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판된다. 번역자는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1889년 조선에 건너와 조선에 자신의 삶을 묻은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다.

'구운몽'은 승려 성진이 하룻밤 동안 꾼 꿈을 다룬 소설이다. 그런데 그 꿈의 내용이 독특하다. 욕망과는 담을 쌓아야 할 승려 성진이 꿈속에서 멋진 남성이 되어 팔선녀, 즉 여덟 명의 아름다운 여성과 만나서는 동침한다. 뿐만 아니라 그 여성들을 모두 아내로 맞아들여서 다시없는 화려한 삶을 누린다.

물론 소설은 엄숙한 조선조 시대에 발맞춰 엄숙하게 결론 내렸다. 세속적 욕망달성의 허망함을 느낀 성진이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서는 정신 수양에 정진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성진의 꿈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닌 은밀한 욕망이며 꿈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담은 '구운몽'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선교사가 조선을 대표하는 문학으로서 서구세계에 소개한 것이다. 역설적이어도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스 게일은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를 조선 대중이 읽기 쉬운 형태의 조선어로 번역한 사람이었다. 하느님의 복음 전파에 강력한 '소명'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그가 '구운몽'을 번역작으로 선택한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욕망의 허망함을 깨닫고 종교적 삶에 정진하는 '구운몽'의 성진의 모습은 선교사 게일이 지향하는 삶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운몽'의 영어 번역이 이처럼 종교적 이유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게일이 살고 있던 조선은 "오래된 것은 모두 사라졌고 새로운 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들어서 있었다. 그 조선에서 게일은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으나, 이미 사라져버린 찬란한 조선 문화의 흔적을 '구운몽'을 통해 읽고 있었다.

물론 1922년의 영국 대중이 동양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건너온, 아홉 사람의 구름같은 꿈을 담은 이 몽환적 이야기를 게일만큼 좋아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시기 영국은 황폐했다. T.S. 엘리어트가 시 '황무지'를 발표하며 생명이 소생하는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황폐했다.

1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그 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었고 공허하고도 폐허와 같은 황량함이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이런 시기 영국의 누군가는 환상과 같은 '구운몽'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차가운 현실을 잊고 잠시 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진(右) : 영국판 '구운몽'(Kuunmong) 삽화 '다리 위의 선녀들'(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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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11-02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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