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모든 것이 희미한데 나는 소스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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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모든 것이 희미한데 나는 소스라친다」를 배달하며…
섬진강 진메 마을에는 '시쓰는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 앞엔 쌀뒤주 크기의 박스가 있는데 누구나 시를 써서 투입구에 넣어두면 시인이 가려뽑아 시화로 만들어 게시를 한다. 이 나무는 시인이 어릴 때 직접 심은 나무이다. "하늘을 향해 무장무장 뻗어나가던 나무가 어느 정도 성장기가 지나니까 뿌리 쪽으로 주저앉더라고. 나무는 뿌리 쪽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성장을 하나봐". 몇 해 전 느티나무에게로 귀향한 시인을 방문했을 때 나는 섬진강 물빛을 닮은 그의 시편들이 나무가 들려준 말을 받아쓰기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나무를 심고 나무는 시를 주었다. '검은 바위'와 같은 육중한 일상을 경이롭게 젖히는 '흰꽃'. 검은 활자들을 들어올리는, 저 소스라치는 흰빛이야말로 느티나무의 시다. 흰꽃은 사라진 그 어느 날과 나무를 건네준 누군가와 까맣게 잊어버린 외진 곳을 잊지 않고자 한다.
시인 손택수
출전 : 김용택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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