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18) 다니 조지의 '안중근'과 '교육칙어'의 부활

cassia 2018. 10. 4. 16:41



(118) 다니 조지의 '안중근'과 '교육칙어'의 부활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7번의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다. 발사된 총탄 7발 중 3발이 이토에게 명중했다. 당시 안중근 31세, 이토 히로부미 69세였다. 이 거사를 치르기까지 3년의 준비시간이 필요했다. 그 3년 동안 안중근은 과연 한결같은 마음으로 목표에 매진했을까. 일본 소설가 다니 조지(谷讓次)는 1931년 발표한 '안중근'이라는 희곡에서 이 질문에 주목한다. 희곡은 안중근이 블라디보스톡 거리에서 대중연설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이토를 암살하기 위하여 하얼빈 역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희곡 속 안중근은 암살 직전까지 갈등하고 회의하는 인물로서 묘사된다. 목숨을 건 암살 작전을 끊임없이 독촉하는 파렴치한 동지들에, 재밌는 이야깃거리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무지한 대중들까지. 그 어느 쪽을 둘러봐도 안중근으로서는 암살 작전을 수행할 명분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상황에 휘둘려 암살을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 3년 동안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을 쫓다보니 그에게 묘한 개인적 친밀감까지 생긴 상태이다.

이 지리멸렬한 상황 속에서 안중근은 '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해야하는가'라는 원론적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얻는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동지들의 강압이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지향하는 동양평화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그 답이다. 즉 신념의 문제인 것이다.

희곡 '안중근'이 발표된 1931년 4월은 일제가 만주 침략을 준비하며 파시즘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였다. 이런 시기에 일본인이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범 안중근을 우호적으로 다룬 소설을 발표한 것은 일본 사회의 저항과 정치적 억압, 통제를 각오해야하는 일이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니 조지가 일본제국을 위협한 식민지 조선인을 희곡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니 조지는 일본을 사랑하고 그 자신이 일본인임을 자랑스러워 한 인물이었다. 수 년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미국의 힘을 경험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파시즘의 길을 선택한 일본의 암울한 미래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만주침략이 가속화되고 있던 1931년, 만주지배권을 얻으려다가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의 기억을 일본 사회에 다시 꺼낸 것이다. 자신의 조국 일본이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밝은 미래를 맞기를 바라는, 다니 조지의 희망이 그 이면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을 보면 아베 신임 내각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1890년 발표된, 천황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이야기하는 '교육칙어'의 현대적 부활을 암시하는 발언을 비롯하여 각종 극우적 발언이 신임 내각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90여 년 전 다니 조지가 일본의 미래에 대해 표했던 안타까운 마음을 돌이켜 생각해볼 때이다. ......사진 : 다니 조지(본명 하세가와 가이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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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 출처 : 매일신문 2018.10.04(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