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젖어든다」박소유

cassia 2018. 4. 4. 03:29

「젖어든다」

 

박소유(1961~ )


앞집 새댁이 몸 풀자

동네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아기를 재워놓고 그 틈에 와 수다 떨다가

젖이 돈다고, 아기가 깼을 거라고

한 걸음에 달려간다

하늘색 원피스에 구름 번진다

저릿하게 몸이 젖어드는

어떤 잡음도 끼어 들 틈이 없는 완벽한 일치다

자동으로 주파수가 맞춰져 있는 거다

우리 동네는 지금 수유 중이다

뿌리에서부터 올라온 젖을 먹이느라

아른아른 실핏줄 돋아나는 젖통은 한껏 부푼다

먹어도 먹어도 금방 고여 출출 넘치는 수액으로

젖나무 새순은 숨이 가쁘다

조그만 입에 젖을 밀어 넣던 그 순간이 다시 와

온몸 젖어드는데

젖나무 아래, 한 세상이 두근거리는 봄날이다

 

―시집 『어두워서 좋은 지금』 (천년의 시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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